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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오!컬트 <바보들의 행진>
2002-09-24

바보들의 행진

“이봐 병태야, 너 이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 그땐 무얼 할거니?’ 아름다운 햇살이 쏟아지는 캠퍼스의 잔디밭에서 영자가 병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영화가 왜 ‘바보들의 행진’인줄 몰랐다가 (몇번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며칠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다가 저 대사를 듣고서야 그 이유를 새삼 알게 되었다. 영자가 ‘이담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저 바보들…”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영화속의 병태와 영자보다 훨씬 어렸을 때인 10대때 이 영화를 보았고, 또 비슷한 또래였던 20대때에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30대 말년에 또 보게 된 셈인데, 이전에는 병태와 영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그래…, 나는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 뭘하고 있을까?”라며 맞장구를 쳤었다. 그런데 30대 말년에 ‘지켜보게 된’ 저 대사는 정말 바보같은 말이었던 것이다. 우리들의 시대란 바로 그때 그들의 등뒤로 떨어지던 낙엽처럼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탈당한 청춘도 새날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보들아. 청춘의 꽃이 활짝 피다 못해 흐드러져 그 향기가 진동을 하는 나이에,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관통하는 그 순간에, 다름아닌 바로 너희들의 시대였던 바로 그 당장에, ‘이다음에 우리들의 시대가 오면…’이라니, 이 바보들아. 이 멍텅구리들아. 왜 청춘은 언제나 탕진하기만 하는 것이냐. 누가 그 달콤한 꿀 같아야 할 나이에 정체도 없는 고뇌와 번민을 싸안고 자학적으로 술을 마시며 보이지도 않는 벽을 향해 몸을 던지라고 유도했더냐. 왜 꿈과 이상은 바라만 보다가 흐트러져 사라지고 마는 뜬구름 같은 것이 되어야 하더냐. 왜 사랑은 언제나 나중에 멀리서 찾아 올 것으로만 기대하는 것이냐. 어째서 모든 욕구와 꿈과 이상과 간절한 바램들과 절박한 그리움들을 보류하며 지금이 아니면 결코 오지 않을 ‘우리들의 시대’를 기다리는 것이냐. 바보들아. 너희는 속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 20대 중반이 되어 버리는데 그때까지 마냥 ‘인생의 준비기간’인줄 알고 그저 참고 견디다가, 열심히 준비만 하다가 어느날엔가 너희의 자식들까지 대학교육을 다 마쳐 주었을 때, 그때서야 한시름 놓고 잡생각이라도 할 여유가 생길 때 아뿔사! 깨닫게 되리라. 제기랄, 우리들의 시대는 20여년전 쯤에 지나가버렸구나. 날새고 노름판 다 끝났는데, “저 아까 아까 광 팔았는데요”라고 말해봐야 광값은 커녕 바보취급만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 값 비싼 인생의 광들을 양손 가득히 쥐고서도 판에 끼어들어 승부를 보기보다 헐값에 팔아버리고도 광값도 못챙길, 너희는 바보들이다. 기득권만 믿고 사는 기성세대는 너희들이 부디 착한 학생신분으로 그 질풍노도같은 혈기와 도전정신을 학교에서, 군대에서, 혹은 깡술이나 마시고 춤이나 추다가 탕진해버리고나서 폐건전지처럼 되었을 때, 입에 풀칠이나 하겠다고 자기들 앞에 머리 조아리고 입사원서 내기를 기다린단 말이다. 그때면 너희가 갈망하던 ‘우리들의 시대’가 시작될 것 같으냐? 바보들아.

그리고 70년대 청년문화가 생맥주와 청바지와 통기타였다는 것은 가증스런 거짓말이다. 그럼 80년대는 브레이크 댄스와 전자기타가 그 시대의 청년문화냐? 이 시대 청년의 고뇌는 컴퓨터게임과 핸드폰이냐? 더러운 위정자들의 대변인들아. 그 가련한 청춘들을 고작 통기타와 생맥주와 청바지라는 싸구려 낭만에 흥청거렸을 뿐인 바보들로 날조하지 마라. 동해바다에 몸을 던진 절망의 청춘이 과연 그것 때문이더냐? 그가 잡아오겠다던 고래가 고작 맥주안주였더란 말이냐?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http://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