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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한숨이…
2002-09-24

신경숙의 이창

태풍 라사에 습격을 당한 강릉이나 김천을 화면을 통해 바라볼 때마다 할말을 잃는다. 탄식조차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요 며칠 장염으로 배앓이를 하고 있는 게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겨질 지경이다.

지난 토요일엔 교보문고에서 사인회가 있었는데 얌전하게 보이는 학생이 책 두권을 내밀며 수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말을 한마디 써달라고 했다. 쓰기 싫었다. 희망이란 말이 그렇게 부질없이 느껴질 수 없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이가 어려운 부탁인가?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사인된 책을 어디에 쓸 것인가? 고 되물었다. 수해를 입은 누군가에게 부칠 거라면 지금 그분들이 마음에 책이 눈에 들어오기나 하겠는가… 얘기해보려는 참이었다. 더구나 이 책은 그분들이 읽기엔 적당치 않는 성격의 것이라고 덧붙여볼 참이었다. 학생은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는데 바자회를 열어 책(내 책만이 아니라 다른 책도)을 팔아서 그 돈을 수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보낼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학생에게 사인되지 않는 내 책을 얼마든지 내주고 싶었다. 도움이 되라는 선의에서만이 아니라 나에게 그들을 향해 어떤 문장을 써달라고만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서. 하지만 이미 책 두권 값을 치르고 내 앞에 서 있는 학생에게 내 심정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라도 수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하는 게 학생의 진심일 터였다. 만년필을 쥐고 있는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었다. 무슨 말을 쓸 것인가. 무슨 말이 그들에게 힘이 된단 말인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 힘을 내라는 말…. 그런 말을 피해보려 하니 말이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맥이 빠졌다.

왜 문학을 하는가, 혹은 소설을 쓰는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막막해진다. 아직 정확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을까? 가정한 뒤에 그에 근접하게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지만 늘 석연치 않다. 그러니 오만 잡다한 이유가 다 글을 쓰게 된 이유이고 또 그 이유들이 모두 답이 아니다. 최근에 내가 하게 된 생각 하나는 나는 무엇을 얻어내려고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얻은 것이 많지만 그러리라 바란 건 아니었다. 나는 비어 있는 것을 메우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나 혼자의 힘으로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는 것이 나에게는 언어를 상대로 한 글쓰기였던 것 같다. 못을 한개 박으려 해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니 무엇과 무엇과 또 무엇과 연결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존재가 온전히 독립할 수 있는 길, 그것이 나에게는 글쓰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은 한가할 때 들락날락하는 생각일 뿐이다.

생각지도 않은 불행 앞에서 최소한의 생존의 터까지 다 잃어버리고 넋을 놓은 사람들을 보게 되니 모든 생각이 뚝 끊겼다. 왜 매년 똑같은 일을 되풀이 당해야 하나, 그러니까 산은 왜 그리 깎아놓는단 말인가, 저 지경은 아니게 미리 예방할 수는 없었는가, 따지고 싶은 마음조차 일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다가 겨우 하느님도 너무하네, 그런 말 따위나 할 수 있었다. 도시의 딸이 폐허가 된 고향에 내려가서 노모만 간신히 구출해내 이 도시로 모시고 오는 모습을 보게 될 때, 한 마을이 형체도 없이 쓸려내려간 자리를 보게 될 때, 내가 생각하는 일이나 내가 하는 일이 그렇게 허무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내 글쓰기가 저이들의 빈자리를 어느 한틈이라도 메워놓을 수 있단 말인가? 나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마음마저 일었다.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도 어느 정도일 때 할 수 있다. 그런 때는 힘을 내라는 말이 위로가 아니라 욕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달리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는 무력함이라니.

시간이 지나고나니 생각이 끊긴 자리에서 또 잡념이 들끓기 시작한다. 추석이라고 사방에서 팸플릿을 우체통에 집어넣으며 상품구매를 호소하고 있는데 아직도 넋을 놓고 있을 그들은 이번 추석을 어떻게들 보낼는지. 지난번 그 학생이 내민 책에 내가 썼던 문구는 지금 어디에서 누추하게 떠돌고 있을는지. 내가 글을 쓰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무참하게 느껴지는 일이 내가 글을 쓰며 사는 동안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그때마다 생각이 끊긴 채로 넋을 놓고 있기만 할 것인지.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