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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
2002-09-24

충무로 다이어리

올 한해에도 ‘조폭’을 소재로 한 영화들의 생명은 죽지 않고 쭉 계속되고 있다. <패밀리>에 이어 <보스상륙작전> <가문의 영광>이 이어지고 있고, 가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경찰이 룸살롱을 개업했다’는 카피로 모 정당을 자극, 정치면에 기사가 게재되기도 했던 <보스상륙작전>이 개봉주 흥행성적 1위를 기록하는가 하면, 조폭 가문이 명문대 졸업생인 엘리트 청년을 사위로 끌어들이고자 고군분투하는 코미디 <가문의 영광>이 금주 개봉예정 영화의 예매 성적 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여자가 조폭 우두머리가 되거나, 조폭이 절로 가거나, 조폭이 학교에 가거나, 조폭이 신분 상승을 하려 하거나 하는 등 조폭을 소재로 한 다양한 ‘변주’가 쉼없이 가열차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폭과 비슷한 코드로 ‘검찰’이 등장, 수사를 위해 룸살롱을 직접 차린다거나, ‘검찰’이 이삿짐센터 직원으로 신문을 위장한다는 식으로 이 역시 ‘변주’되고 있다. 가히 조폭과 검찰이 한국 대중영화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형상이다.

한국 영화계의 ‘암흑기’라고 이야기되는 70년대 유신정권하에 무수히 쏟아져 나왔던 이른바 ‘호스티스’물 영화의 양산이 상기되기도 한다. 정부로부터의 검열 압박과 관객으로부터의 무시로 힘들었던 그 시절과, 한국영화의 국제적 경쟁력이 제고되고 관객으로부터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지금의 양상이 무척 다르기는 하지만.

고전적이고도 영원한 소재로 쓰이는 영화 속 ‘폭력’과 ‘섹스’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불멸의 코드이다. ‘조폭’은 그 두 가지를 가장 쉽게 영화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키워드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누구는 한국영화의 질 저하를 우려하거나, 한국영화의 다양화를 가로막는 원흉이니 비판을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이 그러하듯 우리 모두가 ‘불량식품’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처럼 ‘조폭’ 소재의 영화를 계속 찾아 그 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이창동 감독이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자신의 세 번째 작품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제 영화 연기경력 두 번째인 문소리씨는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했다. <취화선>에 이은 낭보이니 참으로 놀랍고, 또 반갑다. 영화인으로서 바람은, 영화제 수상으로 <오아시스>의 관객동원에 굉장한 가속도가 붙었으면 하는 것이다.

영화제용 영화, 작가주의 혹은 예술영화로 분류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제 수상작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례를 남겨, 한국영화 다양성의 근간을 이루는 데 보기좋게 큰몫 했으면 하는 것이다.

자국은 갱스터 소재의 액션영화나 코미디로 넘쳐나고, 이른바 시장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영화의 파이낸싱을 위해 예술영화 감독들이 난민처럼 해외를 전전하는 과거의 대만이나 홍콩영화계의 행보가 아닌, 철저한 오락영화와 <오아시스>류의 영화도 공존하고, ‘공생’할 수 있는 세계에서 드문 ‘한국형 영화시장’의 모습을 이 마당에 꿈꿔본다.

이창동 감독님, 문소리씨, 꿈을 꿀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축하드립니다.심재명/ 명필름 대표 shim@myungfil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