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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MCA야구단> 김현석 감독이 쓴 제작일지·야구일기(2)
2002-09-25

스포츠에 감동받소? 각본있는 드라마 만들기가 더 힘드오

◆ 2000년, 도포 입은 선수들이 머리 속에 노닐다

2000년 3월15일

동대문야구장에 고교야구를 보러 갔는데, <한국야구사>가 3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아, 그 진중한 史觀이 이렇게 무시돼도 좋단 말인가….

2000년 7월1일

<한국야구사>를 읽은 지 1년 만에 드디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다. 지난 1년간 몸은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머릿속에선 짚신 신고, 도포 입은 야구선수들의 모습이 떠나지 않았었다.

2000년 7월

김병현은 풀타임 메이저리거 첫해에 올스타로 거론될 만큼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있다.

2000년 7월26일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하다. 야구가 처음 들어온 1905년이 을사조약이 체결된 해라는 데 착안을 해서, 일본의 간섭으로 힘들어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극을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고리로 구성하다.

2000년 8월

<…JSA> 기술시사에 가다. 영화가 잘 나와서인지 다들 들떠 있다. 초고를 보낸 뒤 첫 만남인데도, 심재명 대표나 이은 감독 모두 <…JSA> 얘기만 할 뿐, 내 시나리오에 대한 코멘트는 일절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빠꾸’ 맞은 것 같다. 그나마 박찬욱 감독의 한마디가 내게 위안이 된다. “초고 나왔다며? 강호씨가 관심있어 하던데?”

2000년 9월

한국 야구 드림팀, 시드니올림픽에서 숙적 일본을 꺾고 동메달 획득.

◆ 2001년, 각본‘있는’ 드라마가 힘들구나

2001년 1월27일

초고가 나온 지 6개월 만에 나온 시나리오 2고의 모니터 회의. 다들 만족해한다. 액자구조로 바뀐 것말고는 초고와 크게 바뀐 건 없는데, 반응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2001년 3월

시나리오 수정작업을 하는 동시에, 국사학자의 자문을 받아 구한말, 대한제국 시기에 관한 스터디를 시작하다. 프로듀서, 감독 등 ‘오야지’급들은 슬렁슬렁하고 발제하는 조감독만 열심히 한다.

2001년 4월

이은 감독으로부터 낭보를 듣다. 송강호씨가 출연 약속을 했단다. 대한민국의 그 어느 신인감독이 제작사에서 송강호 잡아준다고 하는 데 마다하겠는가? 그래도, 너무 쉽게 좋다는 내색을 해버린 것 같다. 조금 생각하는 척이라도 할걸.

2001년 6월

첫 장소 헌팅을 가다. 1차로 안동 하회마을과 순천 낙안읍성을 둘러보다. 사극의 헌팅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전국에 남아 있는 옛날 건물들이래봐야 6대 민속마을을 비롯해 빤한 곳들이어서 헌팅리스트 작성은 쉽지만, 그만큼, 다른 영화나 TV에서 거쳐가지 않은 곳을 만나기는 힘들다.

2001년 8월15일

시나리오 6고가 나왔다. 광복절 버전인 만큼, 항일(?) 정서를 보강했는데, 그게 악수인 것 같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 영화는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과정의 아기자기한 이야기이지, 독립운동을 얘기하자는 게 아니다.

2001년 11월5일

김병현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극적으로 월드시리즈 7차전 역전승. ‘각본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에게 이같은 ‘각본 없는 드라마’는 자신감을 상실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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