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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감독의 <거류> 제작기
2001-04-06

어머니의 땅에서, 딸들의 이름으로

■한국 근현대사 속 여성의 모습 포착한 다큐멘터리 <거류>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는 4월15일, 서울여성영화제는 의미있는 다큐멘터리 상영으로 문을 연다.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거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로 재직 중인 김소영 교수가 지난 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에 걸쳐 만든 다큐멘터리다. 김소영 교수, 아니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시절 <푸른 진혼곡>(1987)을 만들고, 여성영화집단 바리터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1989)를

선보인지 10년만에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김 감독은 할머니가 살았던 고성에서 이미 부재하는 할머니의 흔적을 훑어가는 사이에 부딪힌 여러 세대의

여성들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여성들이 살아오고 표현해온 방식들을 짚어낸다. 10년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한 여성평론가의 다큐멘터리 제작담,

한국 여성의 삶에 대한 성찰과 탐문의 기록을 싣는다. 편집자

김소영/ 영화감독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사람들은 이제 많은 이동, 이주, 여행을 경험한다. 지난 몇년간 난 이런저런 일로 수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 길 위에서 혹은

기차역, 버스터미널 그리고 공항과 같은 통과의 공간에서 이전 세대의 여성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감금과 열림을. 정착과 떠남을. 또 나의 할머니를

생각했다. 집안에 갇힌 모습보다는 길에 선 할머니. 배를 타고 남해의 섬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할머니, 기차에 몸을 실은 할머니. 그리고 혼자

마지막 길을 떠나는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거류>는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근대화의 시기를 거치면서 강제로 혹은 자발적으로 길을 떠났던 혹은 떠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움직였고 바로 그 이동으로 인해 동시대가 여성에게 부과한 사유와 경험의 틀과 골을 넘어선 또는 그 경계에서 발생하는

긴장 때문에 고통받은 여자들에게 보내는 애도작업이다. 간간이 짧은 축하의 인사이기도 하다. 불교에선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여성들의 삶의 양식이야말로 ‘거류’가 아닌가 생각한다. 할머니의 고향인 경남 고성엔 실제 지명으로 거류가 있으며 그곳의 제법 높은

산인 ‘거류산’에는 아직 옛 성터가 남아 있다.

또한 여성들의 언어를 듣고 싶었다. 시장 좌판에 놓인 몇 마리 건어물을 두고 나누는 이야기 혹은 산사 약수터 앞에서의 웅얼거림. 그리고 ‘언문제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어머니의 죽음을 그녀 자신의 삶의 이야기로 풀어내던 여성들의 개인사이자 집단적 역사의 소리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다큐멘터리의 측면에서 보자면 <거류>는 일종의 문지방에 서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과연 다큐멘터리의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매우 작은 서사,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로부터 망설이며 출발하기 때문이다.

1. 디지털 영상, 음향으로 쓰기

지난 몇년간 영화를 중심으로 페미니즘과 (전)근대성에 관한 글 작업을 하면서 가끔 모르는 누군가와 장거리전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곤 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약간의 소음을 배경으로 낮은 목소리를 전해오는 저 낯선 여자는 누구인가? 그는 나를 알고 있는가?

대체 우린 서로의 말을 듣고나 있는 것인가. 혹은 공중전화에 100원짜리 동전을 밀어넣고 어딘가로 급히 전화를 걸고 있는 느낌. 같은 도시,

근접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어떤 다급함이 내 목소리의 속도를 허둥지둥 잃게 하고 그녀와의 소통은 100원의 효용성이 사라지면서 끝나버리는.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 독자와 만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 근대성의 형성과 여성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좀더 몸에 가까운

방식으로 기술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내 나이는 불혹이라는 마흔 즈음에 가 있었다. 여성영상집단 바리터의 후배들 특히 변영주 감독과

십년 전에 나눈 말, 영화만들기로 되돌아 가리라던 약속의 시간이기도 했다. 99년 봄날, <거류>의 밑그림이 된 몇편의 시들이 담긴 작은 푸른색

공책을 ‘보임’의 신혜은 프로듀서와 변영주 감독에게 보여주었다. 지난 6년간 <낮은 목소리> <숨결> 등의 종군위안부에 관한 3부작을 16mm

필름으로 만들어온 ‘보임’이 제작자로 나서면서 99년 가을부터 준비를 시작해 중간에 휴지기를 가진 뒤 2000년 7월 촬영을 끝냈다.

98년 무렵부터 유통되기 시작한 디지털카메라는 다른 종류의 쓰기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 같았다. 16mm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가 상대적으로

저예산 대안영화의 역사를 허용했다면 미니 DV카메라는 영화제작의 작업환경은 물론 앞으로 배급, 유통까지를 바꾸어낼 것이다. 물론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침공이 있겠지만 아직까지 미니 DV는 소수집단의 작업방식에 우호적인 매체다.

저예산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과 더불어 디지털 필름메이킹 작업이 나를 가장 매혹시키는 점은 현장에서 필드 모니터를 통해 자신의 비전에 가장 가까운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필름작업에서도 필드 모니터를 쓰지만 그것은 현상 이후의 프린트와 상당부분 차이나는 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DV테이프를 사용하는 경우 여러 번의 재촬영이 자유롭기 때문에 롱테이크와 롱트래블링 숏이 허용하는 어떤 계기에 일어나는 우연적 순간을 화면에

들여올 수가 있다. <거류>의 경우 주로 장마철에 촬영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저 밟고 지나다니는 평범한 길 위로 큰비가 내리면 웅덩이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그 웅덩이에 나무와 집들의 그림자가 어리고 때마침 새들이 지나가면 그 자체, 그 순간이 영화적 스크린이 된다. 물이 마르면 사라지는

그 이미지들은 <거류> 1부가 그 흔적을 찾는 언문제문을 구성지게 자아올리던 할머니의 거울 이미지이기도 할 것이다.

<거류>는 예산문제로 주로 캐논 XL카메라로 작업했고 디지 베타카메라를 대여해 4일분에 해당하는 촬영을 했다. 촬영을 담당했던 박기웅씨가 디지털

전문가이기 때문에 우리 스탭들은 많은 것을 배워가며 작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작자인 보임 역시 새로운 형식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촬영, 편집, 시사 때마다 만나는 여러 기술적 문제들을 실험에 임하는 마음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2. ‘거류’ - 의미를 구부리기

제목 <거류>는 여성의 삶의 양식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에 유통되던 의미를 약간 낯설게 사용했다. 즉 거류(居留)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곳에 임시로 머물러 삶’ 그리고 ‘외국의 거류지에 삶’을 뜻하며 주로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동포들을 칭하는 ‘거류민’이라는 단어에서

사용된다. 여성시민권에 대한 전사(戰史)가 보여주듯 사실 여성은 자신이 태어난 곳, 어머니의 땅(母國)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살더라도 외국인이다.

모국은 낯선 곳이 되고 잠시 머물러 사는 거류지가 된다. <거류>는 이러한 여성의 삶의 양식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과 맺고 있는 애도와 우울(mourning

and melancholia)의 정조, 일종의 여성적 기호의 의미화 작용을 소리와 영상으로 담고자 했다. 편집을 하면서 보니 <거류>에는 정말

다양한 형태의 물이 시퀀스마다 담겨있었다. 안개, 비, 바다, 개울, 저수지의 물, 담벽의 습기, 우물 그리고 웅덩이 담긴 물, 수족관의 물

그리고 시장바닥에 흩뿌려진 물에 이르기까지.

또 내가 항상 한국어의 사용에 있어 마음을 빼앗기고 경탄하게 되는 부분은 한자의 표의성이 한글의 표음성으로 번역되면서 나타나는 다음성 부분이다.

즉 거류의 경우에도 去留로 표기하는 경우 1, 떠남과 머무름 2, 죽음과 삶의 뜻을 만든다.

그리고 <거류>의 주공간인 서부경남 지역, 특히 고성에 거류면이라는 실제 지명이 존재하고 있어 작품을 구상할 무렵 그 근처를 지날 때면 거류라는

단어는 구체적인 공간적 육체성을 갖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3. 공간화된 역사의 흔적 - 개인사, 가족사, 여성사

서부경남 지역은 나의 할머니가 태어나고 거주했던 공간이다. 경남 함안에서 태어나 고성으로 시집와 삼천포로 옮기신 뒤 부산에

사시다가 50살 이후엔 서울에서 사셨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거쳐 군사정권의 근대화가 박정희의 죽음으로 마감되던 1980년에 돌아가셨다.

내가 대학에 들어가면 고성에 가자고 늘 말씀하셨지만 바로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그 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게 고성은 채 마치지 못한 상(喪)의

공간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고성으로 급작스레 거취를 옮기면서 고성은 나의 유사 고향이 되었다. 고성에서 아버지는 나와 함께 언덕이나 계곡 혹은 산을

지날 때면 여기는 할머니가 시집올 때 넘어왔던 고개라거나 저기는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의 이모댁이 몰살당한 곳이라거나 하는 말을 하셨다. 할아버지가

남로당 즉 ‘빨갱이’였던 관계로 우리 집안은 오랫동안 연좌제에 묶여 있었는데 나는 그와 관련된 할머니의 험난한 삶을 고성에 와서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리키지 않은 어떤 곳에 눈길이 갈 때도 할아버지가 자신의 가족을 뒤로 하고 홀연히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나 우리 집안만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사가 낳은 냉전 이데올로기나 분단과 관계된 수많은 소사들- “우리 집안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12권이 넘을 거야”- 이 현재를 살고 있는 몇명의 여성들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기억되고 구술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실제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30대라 하더라도 남북분단과 관계된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말하자면 아버지가 월남했다거나 한국전쟁 때 어머니가 가족을 잃어서

고아가 되었다거나.

서부경남 지역은 60년대 이후 급격한 이농이 이루어져 피폐해진 호남 농촌 지역이나 박정희 정권 근대화 과정에서 지역적 특혜를 입어 농촌 ‘근대화’인

새마을운동이 전격적으로 일어난 경북 지역과는 달리 농촌의 전근대적 공간 질서가 비교적 잘 드러나 보이는 곳이다. 특히 3부로 이루어진 <거류>의

1부의 주공간인 경남 고성의 하일면 학동마을은 전주 최씨의 최대의 집성지로 전근대의 흔적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옛날 돌담이 첩첩이

둘러싼 동네를 빠져나오는 골목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 두겹의 시간대가 한 공간에 전개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1910년, 경술국치년에 태어나 전주 최씨 집안에 시집온 한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언문제문에 능하신 분이다. 또 비로소

고성에 가서야 나의 할머니 또한 언문을 잘해 동네 여자들을 위한 언문제문을 많이 지어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4. 전통적인 여성의 표현 양식 - 언문제문

물론 우리 모두는 유교적 가부장제와 그 억압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거류>를 통한 나의 관심은 여성들이

그 억압 속에서도 어떻게 절충된 형태로나마 자신의 삶을 표현할 수 있었는가 하는 데 있다. 예컨대 조선조 여성제문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동명일기>

<한중록> <인현왕후전> 등과 함께 조선조 여성문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제문은 그 유통과정에서 장르적 변용이 가능하다. 즉 산문

수필의 범주를 벗어나 서정적 시가로 전개되는 것이다. 또 제문은 비극문학이면서 윤리문학이다. 조선사회의 윤리와 통과의례 중 가장 절절한 핵점을

이루고 있는 것이 상례와 제례이며 이런 의미에서 여성제문은 비극적이면서도 윤리적인 문학이고 제의가 끝났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전 문장으로

낭송 보관되며 친가, 외가를 중심으로 전사, 유전된다. 그리고 각계각층 여성들에게 보급되어 널리 유통된다. 그리하여 이 여성문학은 일상의 생활문학이

된다.”(유경숙, <조선조 여성제문연구>에서 인용)

위와 더불어 언문을 모르는 여성(주로 양반 여성들이 언문을 습득했다)의 경우, 자신의 어머니나 아버지 그리고 형제가 죽으면 그 동네에서 언문

문장을 잘하는 다른 여성을 찾아가 제문을 부탁한 경우가 많아 여성들의 집단 창작적 형태를 띠고 있다.

딸이 어머니께 올린 제문의 예는 다음과 같다.

“오호 통제면 오호 애재라. 어마어마 멱을 갈고 부실드려 지상의 다달나 회포를 알외잔니 망망누슈 흘러늬려 한강수를 못틔올 듯 생아육아 깊은은

호천도 망극이라 지는희 염염광경 서산의 다라잇고 소여의 두려운 정 오매중 잇지 못희 전사역역 생각한니 골수의 사모친다.

(처음에 제문을 쓰기 위하여 먹을 갈며 붓을 들고 종이에 임하면서 어머니를 생각하여 복받치는 설움과 함께 어머니의 옛날을 생각하고 산천이 무너지는

듯하다. 망망하게 흐르는 눈물은 한강물을 보탤 만하고 낳아서 기르신 깊은 은혜는 하늘처럼 높은지라 지는해는 서산에 달려 있고 소녀의 두려운

정 오매불망 잊지 못한다. 지나간 일을 역력히 생각하니 골수에 사무친다.)”

이번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될 <누수>라는 다큐멘터리는 중국 남부 지역 여성들만의 비밀의 글 ‘누수’를 다루고 있는데, 여성들의 자수문화와

변용된 한자가 만나 이루어진 독특한 글자이다. 누수는 주로 부채나 종이에 쓰여져 의자매를 맺은 친구들 사이에서 교환되거나 노래로 불렸다. ‘언문제문’이나

‘누수’ 모두 한자문화권의 여성적 글쓰기와 연행적 역사를 보여주는 셈이다.

5. 오늘날 여성들의 표현양식

여성제문이 전통적인 여성의 표현양식이라면 <거류>에는 또한 오늘날의 여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재현하고자 한다.

서부경남과 같은 주변 지역에도 이미 많은 여성들이 국내국외의 이동을 통해 한국어, 영어, 중국어와 같은 이중언어를 구사하며 이들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겨갈 때 그 차이 속에서 드러나는 흥미로운 이질적 주체성의 발화가 보인다. 서울 출생으로 고성으로 시집와 중국집을 운영하는 화교

왕홍련씨가 중국어로 말하다가 한국어로 옮겨갈 때, 영국인 남편과 결혼해 현재 독일에 살고 있는 진해 출신의 유승아씨가 한국어로 말하다가 영어로

바꿀 때 말하는 양식과 의미의 결들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와 더불어 학동 할머니의 고어체 언문낭송과 경남의 지역 사투리 등이

들리는데 한 지방의 지역성을 넘어서는 여성들의 언어적 연행성과 그 안에서 연출되는 다양한 주체적 위치를 통해 아마도 연출가는 여성성의 스펙트럼과

여성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들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또 피아노나 무비카메라와 같은 이른바 ‘근대적’ 장치를 자신의 표현매체로 다루게 되면서 일어난 의식과 삶의 전화를 한 여성피아니스트와 <거류>

스탭 중 한 사람인 23살난 스크립터를 중심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경영하던 진해의 유서깊은 클래식다방 ‘흑백’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유승아씨는 결혼하지 않은 30대 중반의 여성이 어떻게 소도시에서 자신의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나가는지를 보여준다. 처음 엄청나게 막혀 있는

것처럼 보이던 그녀의 삶이 사실은 자신이 숨쉴 수 있는 어떤 틈새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거류>의 스탭들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인터뷰와 촬영에 응해준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기 그지없지만 특히 스크립터를 맡았던 이연정씨와의

만남은 특별했다.

나와 세대가 다르고 성장환경이 다른 그녀와의 작업과정은 말하자면 어떤 지식인 페미니트스의 불안을 넘어 차이를 지닌 두 여성이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계기였다. 그래서 그녀가 <거류>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써온 자신의 글이 <거류>의

마지막을 구성한다.

“1910년에서 1977년 사이에 태어난 여성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근대사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여성주체를 구성했는지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가 <거류>의 관심사인 셈이다. 연출자는 이연정씨를 제외하고는 다큐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키지는 않았다.

인터뷰어인 연출자와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이 카메라와 녹음기를 두고 이야기하는 데서 오는 어색함 그리고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공적인 곳으로

옮기는 데 따르는 주저함과 용기 이러한 ‘사이’의 감정들이 드러나도록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