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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 델 플라타 국제영화제
2001-04-06

머나먼 대륙, 영화가 살고 있었네

◆<물고기자리> 출품된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 국제영화제를 다녀오다

마르 델 플라타=김형태/ 영화감독·<물고기자리>

<물고기자리> 해외 배급을 담당하고 있는 미로비전에서 <물고기자리>가 아르헨티나의 마르 델 플라타(MAR DEL PLATA)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영화제로 날아가기 전까지

나는 관광 도시로서의 마르 델 플라타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을 뿐이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대서양을 따라 400km 남하한

곳에 위치한 ‘은빛 바다’라는 뜻의 해안도시, ‘아르헨티나 낙원’(Atlantina Argentina), 한낮에는 일광욕이나 쇼핑을 하고,

밤에는 8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카지노에서 블랙잭을 즐길 수 있는 남미 최대의 휴양지, 19세기 후반 이래 아르헨티나 상류층에게 휴양지로 사랑받았고,

근래에는 가족 단위의 관광지로 각광받는 도시라는 것 정도.

아르헨티나 직행 노선이 없는 관계로 나는 권영일 프로듀서와 함께 서울을 출발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마르 델 플라타까지 27시간을 날아 영화제 현장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3월6일 출발해 8일에 도착한 것이다. 멀고 먼 나라였다.

이보다 더 먼 여행, 더 먼 영화제가 또 있을까. 자도 자도 끝이 없이 지루한 비행 시간이었지만, 마르 델 플라타라는 미지의 도시에 대한 궁금증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가는 동안 동양 사람을 단 한명도 구경 못했던 우리는, 숙소인 셰라톤 호텔에 도착해서야 조직위원회에서 통역자로 소개해준

한국인 교포 2세 모니카를 보고 마치 어머니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했다. 밤 8시에 우리는 많은 시민이 둘러싸고 있는 붉은 양탄자를 밟으며 개막장소인

오디토리움(시립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코레아’와 ‘피시이스’(<물고기자리>의 번역제목 Pisces의 에스파니아어 발음)를 외치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 시민들에게 우린 모니카에게 배운 ‘그라시아스’(감사하다는 에스파니아어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국영화가 소개된 적이 별로 없고, 올해

경쟁 부문에 중국이나 일본영화가 한편도 없어서인지 한국영화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줬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축하 메세지와 함께 올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La Cienaga)이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영화제의 열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라틴 관객들, 아시아에 환호하다 >>>>>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는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제영화제작자연맹(FIAPF)에서 칸, 베를린, 베니스 등과 함께

세계 10대 공식 경쟁 국제영화제, ‘A급영화제’로 분류하고 있다. 1954년 시작된 제법 유서깊은 행사다. 1회는 비경쟁 영화제로 앨프리드

히치콕 등의 영화를 소개했고, 경쟁영화제로 선회한 2회부터 잉마르 베리만, 프랑수아 트뤼포, 아서 펜 등 세계 유수의 감독과 예술영화를 발굴한

남미 최대의 영화제였다. 군부 정권이 들어서면서 1970년부터 중단됐다가, 1996년 다시 부활되어 올해로 16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시아영화에

대한 관심도 각별해서 1996년 12회 때는 중국의 장위엔 감독이, 1998년 14회 때는 이란의 마무드 칼라리(Mahmoud Kalari)

감독이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영화로는 1999년 15회 때 배창호 감독님의 <>이 비경쟁에 출품된 적이 있고, 경쟁 부문에 한국영화로선 처음으로

올해 <물고기자리>가 출품됐다.

1999년 15회 대회까지만 해도 매년 10월에 열렸지만, 우수한 영화들이 먼저 열리는 다른 영화제를 돌다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부터

3월에 개최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아르헨티나가 자국 영화제와 영화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올해는 경쟁작

18편을 포함해 총 163편의 영화가 출품되었으며, 심사위원으로는 지난해 카트린 드뇌브에 이어 줄리 델피가 참여해 많은 인기를 누렸다. 영화제

공식발표에 따르면, 초청인원 400명, 영화제 예산은 240만달러(31억여원).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먼 거리만큼이나, 우리가 아르헨티나영화에

대해 모르듯, 아르헨티나 역시 한국영화를 많이 모르고 있었다. 반면 기타노 다케시 감독과 장이모 감독 등의 영화들은 극장 개봉이나 케이블 방송을

통해 이곳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올해 비경쟁 부문에 출품된 왕가위의 <화양연화>가 일찍 매진되어, 아르헨티나에서도 그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영화제 둘쨋날인 3월9일 오전 <물고기자리> 기자 시사와 기자 회견이 있었다. 한국영화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을 반영하듯, 이곳 영화제에 참석한

기자들 역시 지난해 부에노스 아이레스 영화제에 출품된 <거짓말>과 베를린영화제의 <공동경비구역 JSA> 등 많은 한국영화를 열거하며 <물고기자리>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다음날 아르헨티나 최대 일간지인 <클라린>(Clarin)에선 “사랑과 고뇌를 동시에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언급과 함께

영화제 참가작품 중 꼭 봐야 할 영화라고 소개하며 “약진하는 한국영화”라고 평가했다. 다음날 일반 시사에서도, 만든 사람의 의도에 따라 반응하는

현지 관객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준비하고 만드는 데까지 7년을 들인 <물고기자리>가 개봉 7일 만에 극장에서 내렸을 때의 슬픔과 허탈함을,

이곳에 와서 조금이나마 위로받은 듯 느껴졌다.

아르헨티나 영화, 지하철 역사만큼 유서깊은 >>>>>

아르헨티나 하면 마라도나, 에비타, 탱고 정도를 떠올렸고, 1970년대까지 강대국이었다가 지금은 IMF 금융지원을 받는

라틴아메리카의 한 나라로 알고 있었지만, 와서 보니 내가 얼마나 아르헨티나 대해 무지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을 때, 이 나라 사람들은 이미 지하철을 타고 다닌 셈이다. 1908년에

세워진 콜론 극장(세계 3대 오페라 극장 중 하나)도 아르헨티나의 ‘좋은 시절’을 반영하고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전통과 명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영화제 중반에 열렸던 아주 특별한 시사회, 1929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제작된 세계 최초의 유성영화 시사도 그

전통과 명성의 한자락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행사였다. 거만할 정도로 자국 문화에 대해 자부심이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유럽의 영향을 받아 예술영화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또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때 연간 제작편수가 10편대로 떨어질 정도로 주춤했던 영화 산업도 다시 활기를 띠고

있었다. 현재 아르헨티나 영화의 1년 제작편수는 100여편에 이른다. 편당 순제작비는 평균 6억∼7억원선. 그중 70% 이상은 나라에서 주관하는

영화기구 ‘잉카’(INCAA)에서 제작비를 지원하는 형태이며, 나머지는 민간방송사인 <폴카>(POL-CA)에서 제작비를 투자한다. ‘잉카’에서는

저예산의 예술영화 위주로, <폴카>에서는 상업영화 위주로 제작하고 있다고 하는데, 관객의 선호도는 역시 <폴카>에서 만든 상업영화쪽. 극장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복합극장이 유행(전국에 1400여 스크린)이며, 할리우드영화가 상영작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60년대 아르헨티나를 라틴아메리카

혁명영화의 발원지로 만들었던 페르난도 솔라나스의 열기는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가버린 듯 했다.

영화제에 참가하는 동안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극장 시스템이었다. 경쟁작만 상영하는 오디토리움 극장은 1600석 좌석의

대극장이면서도, 사운드 시스템이 맨 뒷좌석까지 원음 그대로 전달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짜여져 있었는데, 그것이 아르헨티나 극장 전체의

중간 수준이라고 했다. 또 하나, 관객의 다양한 연령층에도 놀랐다. 50대 이상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관객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20대였을 때 아르헨티나는 경제 강국이었고, 그때 영화를 즐기던 그들이 지금 노인이 되어서도 이렇게 극장을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이런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을 다른 극장에서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고개 들어 남미시장을 보라 >>>>>

10일간의 공식 일정을 끝내는 폐막식날, 작품상은 시골의 어린 도둑 이야기를 사실감 있게 표현한 폴란드 영화 <나는 도둑>(It’s

Me, the Thief) 에 돌아갔으며, 감독상은 하녀 자매가 주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살해한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다는 <살인의 상처>(Les

Blessures Assassines)의 장 피에르 드니(프랑스) 감독에게 돌아갔다. <물고기자리>는 수상을 하지 못했지만, 영화제 조직위원회

관계자가 아르헨티나 배급 의사를 밝혀왔다. <물고기자리>가 한국영화의 남미시장 개척에 조금이라도 일조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다. 이곳

영화인들은 벌써부터 오는 4월 열릴 부에노스 아이레스 독립영화제에 출품될 한국영화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 작품들의 선전을 기대하며 앞으로 양국간

영화교류가 더욱더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수상 결과

최우수 작품상 야첵 브롬키(폴란드) <나는 도둑>(It’s Me, the Thief)

최우수 감독상 장 피에르 드니(프랑스) <살인의 상처>(Les Blessures Assassines)

최우수 여우상 줄리 마리 파르멍티에(프랑스) <살인의 상처>

최우수 남우상 율리세스 뒤몽, 페데리코 루피(아르헨티나) <로사리가시노스>(Rosarigasinos)

최우수 각본상 야첵 브롬키(폴란드) <나는 도둑>

라틴아메리카 최우수 작품상 벤투라 폰스(스페인)<`anita no pierde el T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