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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우니 즐겁구나,<실바니아 패밀리>
2002-10-10

애니비전

아름다운 숲 속에 마을 하나가 있다. 스머프의 마을도 보노보노의 놀이터도 아니다. 예쁜 가게와 알록달록한 놀이동산이 있는 이곳은 실바니아 마을. 동물 가족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실바니아 패밀리>는 이 마을의 평화로운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60부작 TV시리즈다. 화별 러닝타임은 2분으로, 오는 12월부터 다음해 4월까지 KBS TV유치원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특이한 것은 일본 에포크사의 캐릭터를 한국에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는 점이다. 제작진 라인업도 든든해서, 코코엔터프라이즈가 기획 및 마케팅, 일신창업투자가 투자, 팡고 애니메이션이 제작을 담당한다. 감독으로는 <아름다운 시절>로 2000년 대한민국영상만화대전 대상을 수상했던 문제대 감독이 활약할 예정이다. 그동안 화제가 됐던 수많은 클레이애니메이션 광고 시리즈를 제작했다. 한편 시나리오는 <아장닷컴>의 오상민, 김희연씨가 맡았다. 5분가량의 영상은 이미 나온 상태.

앞서 말한 대로 <실바니아 패밀리>는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팔리고 있는 완구 브랜드이기도 하다. 스톱모션에 사용되는 인형과 집, 소품들은 상품으로 출시된 것들을 그대로 사용한다. 그래선지 마치 인형이 소꿉놀이하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랄까. 한마디로 귀엽고 앙증맞다. 실바니아 마을에 사는 동물들은 토끼, 곰, 고양이, 다람쥐, 생쥐, 비버, 고슴도치. 모두 일곱 가족이다.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가며 생활을 꾸려간다.

아빠 곰은 슈퍼마켓의 점장으로 낚시가 취미다. 평소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장 보러가고, 취미를 살려 낚시대회에도 출전하는 훌륭한 가장이다. 사탕을 좋아하는 딸과 스포츠 만능인 아들, 쌍둥이 아기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간다. 마을 제일의 학자는 아빠 개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을 가르쳐준다. 엄마 개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양호 선생님. 피아노가 특기인 딸과 학교 급식이 인생의 낙인 아들, 그리고 쌍둥이 아기들과 함께하는 생활이 유쾌하기만 하다.

한편 실바니아 마을의 식량을 책임지는 것은 아빠 고양이다. 아빠 고양이는 마을의 빵을 만드는 장인이다. 체스를 좋아하며 라이벌은 쥐. 추억을 소중히 여기는 엄마와 엉뚱한 아들, 부끄럼 많은 딸과 함께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자식 둘로는 만족 못하는지 이 집에도 갓난아기가 있다.

<실바니아 패밀리>에는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한다. 고양이와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빠 쥐는 가루 빻는 일을 하고, 너구리 아빠는 야채를 재배한다. 아빠 다람쥐는 레스토랑의 지배인이고 엄마 토끼는 마을의 바느질을 도맡아 한다. 인간사를 그대로 옮겨온 것처럼 수다쟁이 아줌마와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도를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완벽한 성역할 분담은 아쉽기 그지없다. 바깥일 하는 엄마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물론 이런 아쉬움은 참새가 날아다니는 황금 들판에서, 산들산들 초원에서, 소곤소곤 숲에서, 도토리 산에서, 담쟁이덩굴에서, 동굴에서, 호수에서, 그리고 일곱 난쟁이도 사용하기 힘들 것 같은 작고 작은 소품들 속에서 산화된다. 숲 속 마을의 평화로움이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유지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보노보노의 독백처럼 숲은 즐겁고, 물소리는 들리고, 꽃을 씹는 소리도 들리는 실바니아 마을. 숲은 즐거우니까 즐거운 것처럼 이들 가족들도 즐거우니까 즐겁다. 우리네 삶도 즐거우니까 즐거울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산다는 게 왜 이다지도 복잡한 건지. 김일림/ 월간 <뉴타입> 기자 illi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