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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
2002-10-10

충무로 다이어리

해마다 거듭되는 일이지만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별 알맹이 없는 고함 소리가 높았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적지 않은 의원들은 ‘동조 세력’의 이해관계를 역설하거나 일장 훈시를 질의랍시고 늘어놓곤 한다. 또 주목받는 현안이 아닐 경우 질의하는 의원 자신도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고압적으로 다그치거나 막무가내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때로는 국정감사 질의를 통해 중요한 문제를 밝혀내거나 이슈로 끌어내 정책방향을 바로잡기도 한다. 때문에 상당수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 때 하는 질의를 주요한 의정활동으로 삼는다. 의원들이 자신의 질의 내용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애를 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9월25일, 국회 문화관광위 소속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영진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질의한 내용을 요약한 보도자료를 냈다. 나름대로 실적이라고 과시하듯 돌린 보도자료의 질의 내용은 내가 보기에는 의정활동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좌진들을 타박해야 할 정도로 남세스러운 것이었다. 현황과 실태에 대한 이해가 일천한 탓에 질의는 문제의 핵심을 비껴나 있으며, 그동안 집요하게 영진위에 대해 흠집내기를 해왔던 ‘극소수’ 인사들의 왜곡된 주장을 그대로 옮겨와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흥길 의원은 먼저 현재 영진위가 “특정세력들의 근거지 역할을 하면서 외곽단체들을 원격조종이나 하는 구조가 지속돼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적어도 한국영화계의 현황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천박한 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특정세력이 근거지로 삼을 수 있으며, 외곽단체를 원격조종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인지, 발상부터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를테면 영진위가 한국독립영화협회를, 영화인회의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을 원격조종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까?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한 말이다. 되레 영진위가 이들 단체로부터 공격이나 당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판인 현실에 원격조종 운운하는 것은 영화계 전체에 대한 심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또 고흥길 의원은 “영상투자조합이 지난 2000년부터 총 157억원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평균수익률이 4.77%에 그치고 있는 것은 영화산업 활성화라는 기대를 난망하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영진위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는 데서 비롯된 왜곡이다. 영진위가 출자한 돈은 수익을 목표로 투자하는 금융자본과는 성격이 분명히 다른 ‘지원금’이다. 방만하게 운용해서 소진된 것도 아니고 수익까지 내고 있다면 오히려 고무적으로 평가해야 할 일 아닌가. 영진위가 출자한 157억을 종잣돈 삼아 조성된 투자조합 규모가 약 908억원 정도이며, 이중에서 지금까지 약 500억원 정도가 영화산업에 투자됐다. 원금손실 없이 영화산업 활성화에 이 정도 기여를 하고 있다면 현재까지는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는 공공자금이 들어간 다른 어떤 부문과 비교해도 결코 과한 평가가 아니다. 또 고흥길 의원은 단체지원사업 지원을 받은 단체 중에 특정신문반대 운동에 참여한 단체가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이는 단적으로, 과격하게 뒤집으면 수재민 중에 유력 대통령 후보의 병역비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은 정부의 보상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논리와 같은 격이다.

국정감사라면 전형적인 질의를 위한 질의, 트집잡기식의 정치공세나 할 게 아니라 영진위의 과실이나 미온적이고 안일한 태도를(있다면) 따끔하게 꼬집어야 한다. 한편 영화산업을 활성화하고 문화적 토양을 다지는 일에 매진하도록 장려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의정활동이 아닐까.조종국/ 조우필름 대표 kookia@jow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