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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신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2002-10-16

“역설적이게도, 미국인들은 이란이 전세계에서 가장 윤리적인 영화를 만든다는 사실이 거의 공인된 지금에도 여전히 이란인을 악마로 보는 경향이 있다.” 2년 전 <시카고 리더>의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평을 그렇게 시작했다. 허구와 픽션, 삶과 영화의 결을 분별할 수 없도록 밀착시키는 영화세계를 가꾸어온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9년작 <바람이 우리를…>은 그의 작품 중 보편적인 재미와 유머가 가장 뛰어난 영화로 꼽힌다.

작고 외딴 마을들을 사랑하는 키아로스타미가 <바람이 우리를…>에서 찾아간 곳은 쿠르드 촌락 시아 다레. 두개의 산 옆구리에 매달려 있는 이 작은 마을에 테헤란에서 온 엔지니어라는 남자 베자드와 동료들이 온다. 선조의 무덤가를 서성이는 타지인들이 보물을 찾으러온 것이라는 소문도 돌지만, 사실 베자드는 여인들이 제 얼굴에 상처를 내며 조의를 표하는 쿠르드 전통 장례의식을 취재하러 온 기자다. 100살이 된 한 여인의 임박한 죽음을 초조히 기다리면서 취재를 독촉하는 휴대폰 벨이 울리면 전파가 통하는 언덕배기로 내달리는 것이 베자드의 업무. 그러나 도시에서 온 사내는,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손자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아무것도 독촉하거나 지배하려 들지 않는 유유한 태도에 천천히 젖어든다.

“그리고 삶과 죽음은 계속된다”는 교훈부터 침묵의 미를 터득한 풍광까지 키아로스타미 스타일의 모든 것을 갖춘 <바람이 우리를…>은 200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