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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표현주의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 회고전(2)
2002-10-17

불안과 공포 통해 인간 본성 그린 프리츠 랑 감독의 걸작들 한자리에

“영화는 당대의 시대적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

바이마르공화국 시절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전통 속에 놓여 있는 랑은, 그러나 특정한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단순화된 강조와 왜곡을 특징으로 하는 표현주의적 요소들과 더불어 과학적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사실성, 로맨틱하고 감상적인 시적 이미지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이질적인 것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은 어떤 일관된 발전단계를 보여주거나 작품의 제작순서에 따라 차례로 드러난 것도 아니었다. <메트로폴리스>에서는 미래 거대도시의 모습과 암울한 지하세계의 모습에서 표현주의적 요소들이 발견되지만, 바로 뒤에 만들어진 <달의 여인>에서는 소재의 판타지적 특성과는 달리 철저한 사실주의가 추구됐다. 그런가 하면 연쇄살인자의 추적을 다룬 <엠>에서는 다시금 어두운 조명과 극단적 대조 그리고 그림자의 극적 사용과 같은 표현주의적 요소들이 두려움과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여기에 새로이 도입된 음향은 단순한 영상의 보조적 수단이 아니라 적극적인 극적 요소로서 사용된다. 그래서 관객은 범인의 모습을 보지 못하더라도 그가 부는 휘파람 소리로 그의 존재를 알게 되며, 텅 빈 아파트 계단에 울려퍼지는 어머니의 불안한 외침을 통해서 딸의 실종을 감지하게 된다.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그의 영화들 역시 이렇다 할 일관된 스타일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무질서의 저변에는 “영화는 본질적으로 시대의 본질과 일치할 때에만 설득력이 있다”는 랑의 신념이 항시 자리하고 있다. 영화는 당대의 시대적 본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프리츠 랑은 이에 걸맞은 주제를 선택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주제들은 대개(상업적 고려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당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던 것이었고 시대를 은유하는 것이기도 했다. <엠>에서 다루어진, 익명화된 대도시 속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정신병적인 연쇄살인이나 <스파이>나 <마부제 박사>에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악당의 모습에는 당시 독일을 뒤흔들던 나치의 광기어린 전체주의의 그림자, 그리고 경제공황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던 독일인의 불안과 공포가 담겨져 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마부제 박사의 천개의 눈>에서 이러한 불안과 공포는 TV로 대변되는 뉴미디어의 확산과 핵전쟁으로 대치된다.

대상의 본질을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표현을 추구한 스타일리스트 프리츠 랑은, 트뤼포가 규정한 것처럼 “철두철미” 그 자체로 영화를 밀고 나아갔다. 독일 시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할리우드에서 작업할 때도 수많은 배우들과 스탭들을 세워놓고 몇 시간 동안 접시 하나만을 촬영했다는 전설은 랑의 완벽주의를 웅변적으로 확인시켜준다. 또한 연극적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독일영화의 일반적인 특징과 연계선상에 놓여 있는 그의 영화에서 일반적인 장면 전환은 대개 매우 느린 편이다. 속도감을 생명으로 하는 범죄영화에서조차도 특정한 장면에서 그의 카메라는 렌즈 속의 대상을 영겁의 그물에 포획하듯 오랫동안 화면에 담아둔다. 때론 이러한 구성은 너무나 정적이어서 마치 힘없는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저항해 자신의 존재를 확보하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극의 과녁을 향해 말을 달려라

결국 랑의 세계에서 개인의 운명적인 투쟁은 비극의 과녁을 향해 말을 달린다. 죽은 지그프리트의 복수를 위해 단호하게 파멸을 향해 노 저어가는 크림힐트처럼, 그의 주인공들은 이미 예정된, 그래서 스스로 알고 있는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아마도 랑의 영화에서 발휘되는 비극성은 바로 자신의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의 날갯짓의 처절함에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시대의 본질을 영원히 포획함으로써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 맞서고자 한 랑의 영화적 저항 역시 멈춤을 모르는 시계바늘의 느린 유영에 언젠가는 추월당하고야 말 숙명을 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미국으로 망명한 랑은 그뒤 당시 할리우드 감독들이 누릴 수 없었던 많은 특권을 누리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러나 영화 자체만을 위해 살아온 랑과 이윤의 극대화를 목표로 세워진 신기루 할리우드가 애초부터 궁합이 맞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비록 프리츠 랑이 망명 감독들 중 미국에서의 삶에 가장 잘 적응했다고는 전해지지만, <마부제 박사> <엠> <메트로폴리스>에서 보여준 그 강렬함은 할리우드에서 다시 재연되지 못했다.

1963년, 장 뤽 고다르는 영화 <경멸>에서 프리츠 랑을 제작자의 횡포 앞에서 무기력하게 카메라를 돌리는 할리우드의 노감독으로 출연시킨다. 그 속에서 랑은 프리츠 랑 바로 자신의 실명으로 오디세이에 관한 영화를 찍고 있었다. 그렇다면 고다르는 왜 이 노감독을 고용하고 자신은 그의 조감독으로 출연한 것일까 어쩌면 영화 <경멸> 속의 프리츠 랑이야말로 영화를 20세기 최첨단 예술매체로 신봉했던 마부제 박사, 그러나 화려했던 전성기를 뒤로 하고 할리우드라는 사이렌의 섬 속에 갇혀 끝내 빠져나오지 못한 외눈박이 거인의 마지막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남완석/ 우석대 영화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