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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표현주의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 회고전(1)
2002-10-17

불안과 공포 통해 인간 본성 그린 프리츠 랑 감독의 걸작들 한자리에

‘2002 프리츠 랑 오딧세이-프리츠 랑 회고전’(문화학교 서울, 주한독일문화원 공동주최)이 10월18일부터 10월2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이 영화제는 지난 2001년 2월 베를린에서 시작해, 뉴욕, 파리를 돌며 열렸던 프리츠 랑 회고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행사다.

프리츠 랑은 <메트로폴리스> <마부제 박사> 등을 만든 두말할 것 없는 독일 표현주의영화의 대가다. 나치를 피해 망명한 미국에서 만든 <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 등으로 할리우드 필름 누아르에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그의 대표작 13편이 상영되는데, 디지털로 복원해 새로 태어난 <메트로폴리스>를 비롯하여, 프리츠 랑의 세계를 진하게 드러내는 신비로운 영화 <마부제 박사>와 <달의 여인> 등이 역시 복원된 프린트로 한국 관객 앞에 선보인다.편집자

히틀러가 막 정권을 잡은 1933년 독일. 괴벨스의 호출을 받은 프리츠 랑은 그의 관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부제 박사의 유언>의 상영금지 조치가 마음에 걸렸지만, 랑은 이 참에 조치의 철회를 부탁해보자고 생각하며 사무실의 문을 들어선 참이었다. 뜻밖에도 괴벨스는 두팔을 벌려 랑을 환대했다. 당황하는 그를 향해 괴벨스는 의외의 말을 던졌다. “총통 각하와 나는 오래 전에 시골 극장에서 당신의 영화들을 보았소. <메트로폴리스>와 <니벨룽겐> 말이오. 그 영화를 본 순간 총통께서는 말씀하셨소. 언젠가 내가 정권을 잡으면 바로 이 사람에게 독일영화계를 맡겨야겠다고 말이오. 어디 맡아주시겠소” 예상치 못한 제안에 당황한 랑은 잠시 망설인 끝에 말문을 열었다. “24시간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괴벨스의 관저를 빠져나오면서 랑은 힐끗 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 반. 은행은 이미 문을 닫았지만 여권과 비자는 다행히 수중에 있었다. 그날 밤 랑은 간신히 옷가지 몇점만을 챙겨 파리행 열차에 올라 미련없이 독일을 떠났다.

SF물부터 서부극까지, 장르 넘나드는 활동

189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19년 베를린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프리츠 랑은 <마부제 박사> 시리즈와 <니벨룽겐> <메트로폴리스> 등으로 당시 전세계적인 감독이 되어 있었다. 그는 과거 행적에 대해 소문이 무성한 괴팍한 완벽주의자이자 SF영화와 심리스릴러 장르의 포문을 연 선구자였다. 이런 그에게 자신이 연출한 스릴러의 한 장면과도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일은 이후 랑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랑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우파(UFA)영화사 스튜디오에서 제왕과도 같은 전권을 휘두르며 자신의 영화적 비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입지에 있었다. <메트로폴리스> 촬영 당시 동원된 5천명의 엑스트라 중, 1100명은 특별히 대머리이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 제작사를 당혹스럽게 했다는 일화는 그에 관한 무수한 전설 중 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이런 입지에도 불구하고 외가쪽이 유대인인 그는 체질적으로 나치의 선동적인 프로파간다와 전체주의에 거부감을 느꼈고, 뒤에 열성적 나치당원이 된 부인과 달리, 홀홀단신 망명의 길에 오른 것이다.

“범죄영화 전문가”라는 별명에도 불구하고 프리츠 랑은 SF물, 멜로드라마, 역사물, 사회드라마, 필름누아르, 심지어 서부극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에 능통했다. 이렇게 다양한 그의 영화편력 속에서 일관된 주제와 스타일을 발견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하고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랑이 “극적 효과”를 위해서 상당 부분 지어낸 것으로 드러난 괴벨스와의 만남 장면은- 최근 입수된 그의 여권을 보면 괴벨스를 만난 직후 바로 독일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거짓말 속에 숨겨진 욕망과 불안의 흔적을 찾아내는 퍼즐놀이처럼 그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열쇠구멍이 된다.

프랑츠랑 회고전 상영 시간표

운명의 향배를 결정해야 하는 그 순간, 랑은 자신에게 밀려오는 거대한 운명의 힘을 피해 급박한 탈출을 시도했다. 그리고 그 운명의 힘은 시계의 분침과 시침의 형상으로 랑을 압박한다. 이른바 전형적인 ‘데드라인’ 장면에 함축되어 있는 주제는 바로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개인과 그를 압도하는 어떤 거대한 힘간의 대결로 요약될 것이다. 그의 영화 <운명>에서 저승사자가 데려간 약혼자를 환생시키기 위해 주인공이 하는 온갖 노력이 결국 수포로 돌아감에도, 다른 생명과 약혼자의 생명을 교환하자는 저승사자의 제안에 주인공 소녀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단호하게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는 것처럼.

그렇다면 이러한 주제가 랑 특유의 범죄물에 와서는 어떻게 형상화되는 것일까 랑의 범죄물에서 시간은 돌이킬 수도 없고 거역할 수도 없는 무자비한 운명의 사자로 형상화된다. 시간의 태풍 속에 말려든 주인공들은 시간의 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온갖 발버둥을 치지만 끝내는 수포로 돌아간다. 인간을 짓누르는 시간의 압박하에서, 랑의 인간들은 정해진 시간에 벌어질 대참사를 최후의 순간에 방지하는 임무를 맡는다. 다이너마이트같이 째깍거리는 시간의 게임. 지금도 할리우드가 애호하는 이 통속적인 스릴러적 요소는 랑의 손에 이르러서는 신과 인간의 대결로 그 영토를 확대하면서 거대한 파도처럼 랑의 주인공들에게 몰려온다. 그래서 그의 영화 속에서 유독 빈번하게 등장하는 시계의 이미지는 바로 거스를 수 없는 힘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반면 랑의 후기 작품에서 이러한 운명의 거역할 수 없는 힘은, 전과자들의 현실적응 노력을 그린 <한번 뿐인 삶>, <당신과 나>에서처럼 법의 이중성과 사람들의 편견어린 태도로 재등장하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주인공들의 의지는 운명의 장난과 충돌되면서 점점 이들을 옭아매는 거미줄이 되어간다. 거미줄에 걸린 곤충처럼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서 예정된 파국으로 나아가는 랑의 인물들은 그래서 내적 갈등의 요소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연쇄살인 행각을 벌이는 <엠>의 살인마는, <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로봇처럼 그리고 <창속의 여인>과 <진홍의 거리>에서 등장하는 팜므 파탈처럼 그 어떤 힘에 의해서 프로그램된 운명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