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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테일
2002-10-17

지하철에는 `아직도` 판타지가 산다

Tube Tales, 1999년 감독 이완 맥그리거 출연 레이첼 와이즈, 제이슨 플레밍, 톰 벨, 짐 카터, 켈리 맥도널드, 한스 매더슨 장르 드라마 (SKC)

지하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 <튜브 테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그 정도가 된다. 영국에서는 지하철을 튜브라고도 부르니까, 제목 자체가 ‘지하철 이야기’가 된다. 9명의 감독이 참여한 <튜브 테일>은 지하철을 무대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들을 담아낸 단편을 모은 옴니버스영화다. 할리우드에서 <프레데터2>와 <고스트 앤 다크니스> 등을 찍었던 스티븐 홉킨스, <모나리자>를 연출한 영국 출신 배우이자 감독 밥 호스킨스 같은 중견도 있고 배우로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인 이완 맥그리거와 주드 로도 연출에 참여했다.

사실 지하철은 그리 만족스러운 탈것이 못된다. 공기는 탁하고, 창 밖으로는 아무 풍경도 보이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세월의 티가 너무 난다. 길이 막히지만 않는다면, 지하철을 탈 별다른 이유가 없다. 하지만 모든 도시는 길이 막히고, 점점 심해진다. 승용차가 쾌적하다는 것은 알지만, 많은 부대 비용을 볼 때 지하철은 서민의 중요한 발이 될 수밖에 없다. <튜브 테일>의 주인공들도 그런 사람들이다. 피곤하고 지친 서민들. 승용차가 아니라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은 지하철을 타면서 꿈을 꾸고, 시름에 지친 현실을 잊는다.

이완 맥그리거가 연출한 <트럼본>에서 트럼본을 연주하는 남자는 한 여인에게 반한다. 역무원이 매표소 창에 붙여놓은 분실한 신분증을 보고는 바로 사랑에 빠져서 가는 곳마다 그녀의 환상을 본다. 마침내 현실의 그녀를 만났을 때, 그 남자는 아무 말없이 나지막히 트럼본을 불어준다. 아만도 리누키가 연출한 <입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은 <트럼본>과는 전혀 반대의 판타지다. 철없는 여인들, 여장남자, 연인 등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떠들어대는 통에 지하철 안은 짜증스러운 시장바닥이다. 그 안으로 한 여자가 들어온다. 깔끔한 옷차림,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커리어 우먼. 그녀를 본 순간 모든 이들에게 환상이 시작된다. 그녀와 함께 감자튀김을 먹고, 그녀와 함께 즐거운 파티를 하고, 그녀와 사랑을 하고 등등. 그들의 환상이 극에 달하고 마침내 그것을 현실에 옮겨보려는 용감한 건달이 나섰을 때, 모든 것은 산산조각난다. 입으로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무엇이 그들을 현실로 돌려놓는다. 처참할 정도로 잔인하게 보통 사람들의 꿈을 깨버린다. 지하철은 모든 것이 존재하고,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곳임을 <튜브 테일>은 때로 즐겁게, 때로 슬프게 보여준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