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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로서 동성애영화로서 <로드무비>는 왜 위대한가 (2)
2002-10-25

오해받은 걸작,미래의 고전

왜 대식은 자신을 미워하며 자신의 성적 욕망을 경멸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대식이 강제규 감독이나 임상수 감독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얼뜨기 마초 캐릭터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전형적인 한국 마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유명한 등반가였다. 어떻게 이보다 더 마초적일 수 있겠는가 한국의 마초 남성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정한 남성 역할과 이미지를 수행하도록 단련되는데 이것은 지겹지만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이 이 남성으로서의 역할과 이미지를 수행할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될 때, 그의 삶은 조각조각 부서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소주병을 깨부수는 것은 단순한 시작에 불과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최초에 대식과 석원을 묶어준 것은 바로 두 사람 모두 이 남성적인 스테레오타입으로 살아가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각자 이유는 달라도 두 사람은 모두 자기 자신을 낙오자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 다 자살을 기도하지만 이제 둘 사이의 우정이 그들의 삶에 이유를 제공한다(문제가 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결정적 순간이 오기까지, 둘 사이에 성적 요소가 개입하지는 않는다). 그들 자신에게조차 불분명했던 이 사실은 주정뱅이 노가다 십장 김민석을 우연히 만나면서 분명해진다. 그는 또 다른 낙오자이자 이성애자이지만 결국 정말로 자살을 하고 만다. 그리고 대식과 석원은 그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이상화된 해결책 대신 문제점을 부각시키다

대식은 영화의 어떤 부분에서도 석원과 섹스를 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성관계를 가짐으로써 석원을 이성애자로 살라고 타이르며 스스로 떠나보내야 했던 과거의 남자들과 같은 위치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직 등반가는 다른 모든 등반가들과 마찬가지로 ‘순수’라는 일종의 이상화된 관념의 비탈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왜곡이자 차단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영화 속의 이 모습은 엄연한 현실에 다름 아닌 것이다.

당연히 몇몇 동성애 운동가들은 동성애자들의 왜곡된 심리를 지나치게 강조한 이 영화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지배 문화의 부정적 이미지에 대항하기 위해 동성애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웃기는 좌파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나 자신이 동성애자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라는 것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한국영화에도 그러한 것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마지않지만, 이상화된 해결책보다는 문제점의 부각에 초점을 두기로 한 김인식 감독의 결정은 분명 정당하고도 타당한 것이다. <로드무비>는 동성애를 선전하는 영화가 아니라 동성애적 감정이 자연스럽고 흔한 것이며 한국사회에서는 대부분 좌절되고 만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영화이다. 나는 이번 가을 <로드무비>의 관객 중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에서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보지 말았어야 할 것을 보게 되었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나는 파스빈더가 1974년에 <페트라 폰 칸트의 쓰디쓴 눈물>을 만들었을 무렵 같은 현상이 벌어졌던 것을 기억한다.

풍부한 미장센, 정교한 영화언어

이 영화의 훌륭한 점은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를 두번 이상 보게 되면 김인식 감독이 자기 부정에서 억압으로, 다시 주체 못할 해방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여정을 얼마나 절묘하게 구성해내고 있는가, 그리고 그가 화면의 구도와 카메라의 움직임, 배경의 선택 등을 통해 좌절된 인물들의 내면을 얼마나 영화적으로 표현해내고 있는가에 경탄하게 될 것이다. 표현주의적인 요소와(첫 정사신)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다큐멘터리적 요소(노숙자들의 모습을 담아낸 핸드헬드 장면), 그리고 절제된 서정적 이미지를 (전처와 아들을 만나는 대식의 모습) 병치한 <로드무비>는 올해 나온 영화들 중에서 전체적 미장센이 가장 풍부한 영화 중 하나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영화 속에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함에도 줄거리가 일관성을 잃거나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강한 정서적 투영에 힘입은 영화는 전혀 다른 시각적 관용구들을 사용해 인물들의 문제점과 이를 제대로 해결해내지 못하는 그들의 만성적 무기력을 부각시키고 있다. <로드무비>의 영화언어는 올해의 한국영화들 중 견줄 수 있는 작품이 몇편 안 될 만큼 정교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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