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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로서 동성애영화로서 <로드무비>는 왜 위대한가 (1)
2002-10-25

오해받은 걸작,미래의 고전

지금 이 시점에서 많은 평론가들이 내 생각에 동의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지만, 김인식 감독의 데뷔작 <로드무비>는 분명 걸작이다. 지금으로부터 수년 뒤, 나는 이 작품이 장래의 고전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또한 프랑스 사람들이 일컫는 이른바 un film maudit, 즉 처음 등장했을 때 당대의 관객과 비평가, 배급업자들로부터 부당하게 오해와 멸시를 받는 작품으로 재평가받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로드무비>를 처음 보았을 때 이 영화가 2002년의 다른 한국영화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고 있고, 영화의 드라마나 정서가 강렬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던 터였지만, 나 스스로 이 영화가 걸작이라고 믿게 된 것은 이 영화를 세번쯤 보고 난 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개봉했을 때 세번씩이나 이 영화를 볼 만큼 시간과 인내력을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재평가는 아마 DVD가 출시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젠가 이 영화가 제대로 평가받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 <로드무비>는 응답없는 짝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동성애자 남성이 이성애자를 사랑하고 이성애자 여성이 동성애자 남성을 사랑한다. 영화는 토끼굴처럼 복잡하게 뒤엉킨 짝사랑의 심리학 속으로 얽혀들지만, 마치 굴 안의 토끼가 그러듯이 어둠 속에서도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실 두 이성애자 캐릭터는 상투적인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주가 폭락으로 거지 신세가 된 증권 거래인 석원은 파멸의 나락에 빠진 천박하고 어리석은 중산층이고 약물에 찌든 피폐한 창녀 일주는 근사한 짝을 만남으로써 소도시의 비참함과 모멸감으로부터 자신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유형의 인물들은 수없이 많은 한국영화에서 발견되는 상투적인 것이다. 비록 김인식 감독의 시나리오와 두 배우의 연기가 이 인물들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만약 영화가 이 두 인물 사이의 이야기로 국한되었더라면 아마도 별 볼일 없는 작품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 <로드무비>를 진정으로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 삼각관계의 정점을 제시하는 전직 등산가인 동성애자 주인공 대식이다.

‘한국 마초’로 태어난 동성애자의 비극

잠시 ‘동성애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속에서 동성애는 이제 흔하디 흔한 것이 되었다. 한국영화에서 동성애자들은 감독이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대부분 약하고 신뢰할 수 없는 웃음거리로 묘사되고 있지만 적어도 이제 동성애자 캐릭터의 등장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실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들은 가족과 사회의 강한 억압 속에서 동성애자들이 그들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을 것을 여전히 강요받고 있는 한국에서조차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서동진씨와 같은 선구적인 동성애 운동가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동성애자들은 그 절대 다수가 여전히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상태에 남겨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가족, 친구, 동료들에게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숨긴 채 이중의 삶을 살고 있다. 때문에 많은 한국의 동성애자들은 거짓된 삶을 강요받음으로써 상처받고 있는 것이다.

<로드무비>는 시작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다. 영화 속에서 관객은 대식이 한때 결혼을 했었고 자식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대식의 나이와 그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는 결혼을 하고 아내 정인을 임신시켰던 무렵 이미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동성애자들의 표본인 셈이다. 영화 속에는 드러나지 않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대식은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집을 떠나고 만다. 그리고 아내는 대식의 아이 수호에게 대식이 그의 삼촌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대식이 더이상 거짓된 삶을 살지 않기로 결심한 순간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 이는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내와 자식을 떠나온 대식이 느끼는 죄책감과 이로부터 자라나는 자기 혐오와 증오의 감정이다. 이 때문에 그는 서울 거리의 노숙자로 전전하며 애정을 느끼는 동성애자들로부터도 달아나고 마는 것이다. 사실 그는 일부 멍청한 이성애자들보다도 더 반동성애자적인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이조차도 그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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