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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회의 폐부를 찌르는 배우 숀 펜·감독 숀 펜
2002-10-25

구제불능의 인 불세출의 배우

“숀 펜의 미덕은 그가 문제적 인물들에게서 공감과 연민을 이끌어낸다는 데 있다. 그는 결코 성자는 못 된다.” <아이 엠 샘>의 감독 제시 넬슨은 숀 펜의 연기 미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것은 비단 이 영화에서의 연기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숀 펜은 언제나 미국의 가장 어두운 그늘에 웅크린 구제불능의 문제아들을 연기해왔다. 납치에 강 살인죄로 수감되고도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러 온 수녀를 희롱하던 그 눈빛, 그 웃음(<데드 맨 워킹>). 동정할 가치도 없는, 최악의 인간이 거기 있었다. 그런 그가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릴 때 그것이 진정한 참회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임을 알면서도, 우린 용서하고 만다. <칼리토>의 타락한 변호사는 어떠한가. 암흑가 거물인 친구에게 “기생하던 그는 결정적인 순신의를 내팽개친다. 천박한 생존 근성. 그런데 가엾다. <유 턴>의 ‘재수 옴붙은’ 사나이 바비도 마찬가지다. 그는 돈을 갚으러 가던 길에, 그만 ‘불결한 욕망’에 사로잡혀 끝없이 수렁으로 빠져든다. 바보야, 속지마, 그냥 가. 운명의 덫에 발을 들이는 저 어리석음. 그렇다. 그는 우리다. 잔인하고 천박하고 불결하고 나약한, 우리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라고 인정하게 만드는 건 전적으로 숀 펜의 힘이다. 비전형적인, 예측 불가능한 캐릭터들, 그들이 처한 상황을,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게끔 하는 솜씨가 그에겐 있다.

숀 펜은 자신의 분신들을 통해 미국사회의 폐부를 들쑤시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자기 친구들을 죽인 아버지를 고발하는 아들의 불안과 절망을 그린 <폐쇄 구역>에서 그는 권력과 자본에 근간한 미국의 질서를 조롱한다. 강간과 살인의 향연을 이끄는 미군으로 출연한 <전쟁의 사상자들>, 허무와 냉소로 방패를 두른 상사로 출연한 <씬 레드 라인>에선 전쟁의 상흔을 들춰낸다. <헐리벌리>에서는 마약에 빠진 캐스팅 디렉터로 출연해 할리우드의 이면을 고발한다. 드물긴 하지만, <천사탈주> <더 홀> <아이 엠 샘>에서처럼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과 믿음이다.”라는 그 자신의 복음을 설파한 적도 있었다.

숀 펜이 자신의 몸을 빌려 강조한 이야기들은 그가 감독의 이름으로 카메라 뒤에 숨었을 때도 되풀이된다. 그가 만든 세편의 장편영화는 모두 ‘도덕적 혼란’을 따라잡는다. 첫 영화 <인디안 러너>에선 건실한 경찰관 형이 난봉꾼 동생과 부딪히고 갈등하며, <크로스로드>에선 음주운전 사고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출소한 피의자를 스토킹하고, <플레지>에선 은퇴한 경찰관이 여아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또 다른 여아를 미끼로 삼는 집착과 광기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 누구도 이들을 나무랄 수 없다. 이런 상황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 뭐라 답하기 힘들 것이다.

숀 펜은 좋은 감독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를 정확히 알고, 간결하고 박력있게 풀어가는 법 또한 알고 있다. 그도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연기가 아니라 연출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해왔다. “해석 내지는 재생 예술로서의 연기를 존중하지만, 이제 나 대신 누가 해주길 바랄 뿐이다. 난 더이상 연기를 즐기지 못한다. 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든 건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험이었으니까.” 배우 끝, 감독 시작 그렇지만 그의 다음 행보를 미리부터 점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그는 또다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이다. 십수년 동안 ‘당신들 사랑 따위 필요없다’며 인상구기고 다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해달라’고 칭얼대는 어린애의 낯섦으로 돌아온 숀 펜이 아닌가. 박은영 cine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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