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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리브스덴 스튜디오 세트 방문기(2)
2002-10-25

문이 열리고,환상이 시작된다

대연회장

“어딘지 아시겠죠” 안내자가 미소짓는데도, 공중에 호박과 촛불이 떠 있지 않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다. 호그와트의 신입생들이 기숙사를 배정받고 할로윈과 크리스마스의 성대한 만찬이 벌어지는 대연회장은 <해리 포터> 시리즈 최초로 만들어진 세트로서 옥스퍼드대학의 크라이스트 처치 칼리지가 모델이다. 시대성, 재료, 골동소품은 최대한 진짜에 가깝게 살리면서도 때로는 마술적으로, 때로는 팬시상품처럼 변신하는 공간이 목표였다. 가로 12m 세로 42m의 크기에 노르만 양식의 아치를 썼는데, 놀랍게도 바닥은 통상 쓰이는 석고가 아니라 요크셔 스톤이라는 값비싼 석재다. 예산걱정 없는 블록버스터의 사치일까 “처음 바닥을 보고는 워너에서 당신 제정신이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대연회장은 실제로 400여명의 어린이 배우들이 끝없이 들락날락하는 곳이며 시리즈 내내 등장하는 공간이다. 겉보기만 그럴듯하게 칠했다가는 1편 촬영 도중에 거덜났을 게 분명하다.”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만(헤이데이즈 필름)은 고개를 젓는다. 대연회장 세트에서 가장 까다로운 대목은 지붕. 지붕을 원했던 미술팀은, 원래 영화의 사운드 스테이지가 아니라 공장 용도로 지어진 탓에 그다지 높지 않은 리브스덴 스튜디오의 천장에 글자 그대로 이마를 짓찧으며 고민해야 했다. 스튜디오 천장을 뚫는 아이디어도 나왔지만 소방 출구와 얽힌 문제가 발생했고 소리의 반향도 걸림돌이었다. 미술팀은 결국 미니어처 지붕을 따로 만들어 세트와 합성했다.

입학 첫날의 해리, 론, 헤르미온느가 걸은 길을 따라 연회장을 돌아나와 기숙사 층계참에 이르렀다. 컴퓨터그래픽의 마법이 필요한 움직이는 계단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높다란 벽에 빼곡히 들어찬 초상화들이 손님을 맞았다. 아니, 그런데! 몇몇 초상화 모델의 이목구비가 묘하게 눈에 익다. 바짝 들여다보니 <해리 포터> 제작진들이 고풍스런 옷을 걸치고 시치미를 뗀 채 그림 속에 앉아 있다. 초상화들의 맨 상석은 물론, 프로덕션 디자이너 스튜어트 크레이그! 액자 밑에 붙은 그의 이름은 호그와트 교장의 존함을 우스꽝스럽게 변조한 ‘덤블파르트’(Dumblefart)였다.

비밀의 방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최대의 역사(役事)였던 ‘비밀의 방’으로 가는 길은 조금 멀었다. 열두살의 해리가 그리핀도르 기숙사의 선조에게 물려받은 검을 잡고 숙적을 겨누게 될 비밀의 방은, 실내 스튜디오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다다른 리브스덴의 끝자락에 웅장한 덩치를 감추고 있었다. <해리 포터> 1, 2편을 통틀어 최대 규모인 비밀의 방은 가로 75m 세로()36m의 광대한 입을 벌린 채 독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각기 다른 포지션으로 혀를 날름대는 16개의 뱀머리 석상이 도열한 가운데 슬리데린 살라자르의 두상이 러시모어산의 미국 대통령들 같은 위용으로, 그러나 그보다 훨씬 사악한 표정으로 버티고 있다. 조앤 K. 롤링이 묘사한 비밀의 방은 높은 기둥들이 솟아 있고 엄청난 몸통의 뱀들이 그 위를 기어다니는 수직적으로 거대한 공간. 그러나 여기서도 프로덕션 디자인팀은 천장 높이의 한계에 부딪혔다. 수월한 대답은 시각효과로 높이를 더하는 것이었지만 스튜어트 크레이그는 깊이감을 통해 높이의 환각을 창출하자는 아이디어에 착안했다. 즉, 뱀과 슬리데린의 석상 주변을 검게 물들인 수천 갤런의 물로 채움으로써 수면 밑에 수백 피트의 공간이 뻗어 있는 듯한 착각을 자아낸 것이다. 하지만 물의 계책이라고 물로 볼 일은 아니었다. “물이다!”라고 외쳤던 <해리 포터> 디자인팀의 ‘아르키메데스’들은 물을 살균하고 공급하는 데에만 5만파운드가 소요되고 그 물을 버리는 데에도 엄격한 환경 관련 법규를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땀을 흘려야 했다(<해리 포터> 세트 중 대형 세트 제작비는 약 30만파운드, 침실과 같은 소규모 세트 제작비는 2만파운드가량이 소요됐다고 한다). 경위야 어찌됐건 축축한 습기의 여운과 뱀의 독기가 떠도는 비밀의 방 가운데에 서자 알 수 없는 오한이 몰려왔다. 그 옛날 빅터 마추어가 주연한 <삼손과 데릴라>의 세트가 이랬을까 비밀의 방에서 느낀 위축감의 정체는 거대한 생소함이었다. 현대의 인간들은 더이상 이런 건축물을, 오로지 순수하게 제의와 숭배와 징벌만을 위한 건축물을 방대한 피와 재물을 들여 만들지 않는다. 그런 것을 보려면 고대의 도시로 여행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제 그러한 무모한 구조물은 영화의 전유물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왠지 침몰하는 대륙의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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