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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절 멜로를 싹틔우다
2001-04-11

심사의 충무로작가열전 14 유두연

1950년부터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쨌거나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법. 50년대 중후반은 폐허와 절망 위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려 안간힘을 쓰던 고난의

시대였다. 유두연은 이 전후재건기를 대표하는 시나리오 작가다. 영화는 이 궁핍했던 시대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위로한 거의 유일한 오락수단이었다.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이전이므로 대중이 접할 수 있는 예술이라고는 직직거리는 소음을 대동한 라디오 드라마가 전부이던 그 시절, 영화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고 눈물로 한(恨)을 씻어내게 만들었던 무소불위의 위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유두연은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반에 이르는 10년 동안 집중적으로 30편에 이르는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60년대에 크게 유행한 전후 멜로드라마의 기초를 닦고

한국영화 부흥의 초석을 마련한 작가로 평가된다.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한 유두연은 해주공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직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경응대학 불문과를 졸업한 식민지의

엘리트청년이었다. 40년대 후반부터 선진적인 영화평론을 발표해오던 그는 한국전쟁 동안 부산으로 피난온 영화쪽 사람들과 깊은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한다. 그의 시나리오 데뷔작은 환도 직후인 1954년 발표된 신상옥의 <코리아>. 당시의 시대정신에 발맞춰 우리의 국토와

전통에 대한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해 제작된 작품인데, 명승지와 관련된 고사들을 극화하여 삽입한 일종의 문화영화이다. <유전의 애수>는 부잣집

아들과 창녀가 부모의 반대와 사회적 매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맺으려 애쓴다는 내용으로 당대의 관객에게 눈물을 펑펑 쏟도록 만든 작품인데,

이후 60년대 후반까지 크게 히트한 이른바 ‘한국적 멜로’의 한 맹아를 보여준다. <마인>과 <실락원의 별>은 우리나라 추리소설계의 거목

김래성 원작의 장편소설을 각색한 작품. 특히 자신의 애독자와 애정의 도피행각을 벌이는 유명소설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실락원의 별>은 흥행에

크게 성공해 이듬해인 1958년 그 속편까지 만들어진다.

유현목이 만든 <잃어버린 청춘>은 25시간이라는 한정된 타임프레임 안에 당대의 청춘들이 겪어야만 했던 불안하고 절박한 시대상황을 솜씨좋게

묘사해낸 수작으로 꼽힌다. 임화수가 제작한 <그림자 사랑>은 최무룡, 윤일봉과 더불어 홍콩배우들을 대거 출연시킨 한·홍합작의 멜로드라마로

홍콩에서는 <다정한>(多情恨)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됐다. 홍성기가 촬영과 감독을 겸한 <산넘어 바다건너>는 당시 떠오르던 청춘스타 김지미의

매력이 마음껏 발산된 초특급 흥행작. 고아로 자라난 스물두살의 아름다운 처녀 윤경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 모든 인간들에게 저주있으라!”며

절규하던 장면이 일품이었다는 것이 모든 원로영화인들의 한결같은 회고다. 당시 수십만명을 헤아리던 전쟁미망인들의 애달픈 삶을 안타깝게 묘사한

것이 유두연의 감독데뷔작 <유혹의 강>. 엄앵란과 노경희를 비롯하여 나애심, 김의향, 정애란, 김신재 등 당대의 여배우들이 총출동한 이

영화는 숱한 여성관객의 옷고름과 손수건을 적셨다. <귀거래> 역시 전쟁미망인이 새로운 삶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시대상황을 충실히

반영한 멜로.

홍성기의 <춘향전>은 같은 해 개봉된 신상옥의 <성춘향>과의 맞대결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작품. 두 감독이 각각 자신들의

아내인 김지미·최은희를 내세워 정면대결을 펼쳤는데, 흥행결과는 배급업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성춘향>의 일방적인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 맞대결의

결과 그동안 멜로 분야에서 절대우위를 지켜오던 홍성기의 위세가 차츰 사그라든 반면, 신상옥은 승승장구의 연타석 홈런으로 충무로의 패자가

된다. 평생 8편의 영화를 연출한 유두연의 마지막 감독작품은 자유당 시절 국회의 부패상을 낱낱이 파헤쳐 고발한 정치영화 <어딘지 가고 싶어>.

최무룡이 개혁의지에 불타는 젊은 국회의원으로 나와 열연을 펼친다. 전쟁 직후와 혁명 직후 각기 다른 내용과 스타일의 시나리오를 내놓는 것을

보면 유두연에게는 확실히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볼 줄 아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54년

신상옥의 <코리아>

1955년

김성민의 <망나니비사>

1956년

유현목의 <유전의 애수>

1957년

한형모의 <마인>

유현목의 <잃어버린 청춘> ★

홍성기의 <실락원의 별> ★

1958년

김화랑의 <그림자 사랑>

홍성기의 <산넘어 바다건너> ★

유두연의 <유혹의 강>

1959년

정창화의 <사랑이 가기 전에>

권영순의 <양지를 찾아서>

1960년

이용민의 <귀거래>

조성호의 <바위고개>

1961년

홍성기의 <춘향전>

1962년

유두연의 <어딘지 가고 싶어>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