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도덕적 진실은 어디에?
2001-04-12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퀸테트>

Quintet 1979년, 감독 로버트 알트먼 출연 폴 뉴먼

EBS 4월14일(토) 밤 10시

1970년대 미국영화는 유례없이 젊은 에너지로 충만한 듯 보였다. 이른바 영화학교 세대, 즉 마틴 스코시즈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 등의 감독이 급부상하면서 미국영화는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196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었으며

세대로 따지자면 조금 나이든 축에 속한다. 지향하는 바 역시 달랐다. 영화학교 세대 감독들이 선배 감독들의 작가적 기질에 대해 존경어린

태도를 보였다면,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미국영화의 전통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편이었으며 엄밀하게 보면 유럽문화에 심취하는 양상을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로버트 알트먼 감독이 만든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길고 긴 이별> <내쉬빌> 등의 대표작은 기실 서부극과 필름누아르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장르영화를 해체하고 할리우드 관습에 저항하는 알트먼 감독의 반골기질을 여지없이 노출한 경우다. <퀸테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남루한’ 판타지영화 중 한편으로 기억될 <퀸테트>는 디스토피아 모티브를 축으로 감독의 암울한 세계관과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를 담고 있다.

빙하기가 도래하여 인류 대부분이 죽음을 맞이한 미래. 살아남은 인간들은 지하세계로 숨어들어 퀸테트 게임을 하며 소일한다. 물개 사낭꾼 에섹스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에섹스가 동생 집에 아내를 머물게 하고 잠시 시장을 간 사이, 거대한 폭음이 들린다. 에섹스의 아내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에섹스는 퀸테트 게임에 말려드는데 게임의 규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진 사람이 개의 먹이가 된다. 게임을

하면서 그는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밝히려고 애쓴다. <퀸테트>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충격적인 결말을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전멸 위기에 처한 인류는 지하세계에서 게임에 몰두하는데 이 게임은 단순한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참가자들은 배신과 탐욕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인다. 판타지영화에서 출발한 <퀸테트>는 점차 스릴러로 이동하면서 퀸테트 게임에 끼어든 인간 군상이 서로를 모략하고 살해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평론가 로빈 우드는 <퀸테트>에 대해 감독의 작가적 재능을 과시하는 작품이라 논하면서 “인간이란 늘 남보다 한발 앞서고

싶어하는 존재라는 것을 투사한 점에서 알트먼 감독의 개인적 관점을 적나라하게 제시하는 영화”라고 평한 바 있다.

<퀸테트>에서 알트먼 감독의 유럽적인 것에의 동경은 여전하다. 렘브란트의 회화적 이미지를 영화 전반에 빌려오고 있으며 고다르의 <알파빌>을

연상케 하는, 특정 장르영화로부터의 일탈을 시도하고 있다. <퀸테트>는 결과적으로 ‘도덕적 미스터리’의 진실을 규명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알파빌>과 소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같은 점이 알트먼 감독에게 화려했던 시기를 접고, 정상적인 연출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던 1980년대로

향하게 하는 수렁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퀸테트>는 당시 미국관객과 평단 모두에 외면당한 실패작이었던 것이다. 로버트 알트먼 감독이

명성을 회복할 수 있었던 건 그가 할리우드에 대해 얼마나 철저한 혐오감과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를 고백하고 있는 <플레이어>(1992)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이는 알트먼 감독에게 있어 연출력의 기복이 그만큼 심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sozin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