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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란의 영화사 신문 제1호(3)
2002-10-30

영화사 신문

뤼미에르 형제 인터뷰“재봉틀 노루발을 보고, 유레카!”

1986년 1월 고향인 리옹에 시네마토그라프 상설극장이 개관 직후, 발명가 뤼미에르 형제를 만났다. 앙투안 뤼미에르의 아들인 루이 뤼미에르와 오귀스트 뤼미에르 형제는 마르티니에르 학교에서 실용과학을 공부한 뒤 아버지 사진건판회사의 책임자로 일해왔다. 하지만 형제는 사업보다 발명에 몰두,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우리 시대 최고의 발명품을 만들었다.

어떻게 상설극장을 열 생각을 했나.

→ (오귀스트) 그랑카페 상영이 예상외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첫 상영은 저조했지만 관객이 점점 늘어나 요즘은 하루 2천명의 관객이 몰리고 있다.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경찰을 불러야 할 정도다. 하루 상영횟수도 20회에 이른다.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발명품이 나오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 (루이) 처음 만든 기계들은 시원치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파리의 에디슨 총판점에서 본 키네토스코프였다. 이 기계를 보고 필름 양쪽에 구멍을 내서 필름을 고정하면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필름을 어떻게 돌리느냐 하는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다 잠 못 이루고 뒤척이던 어느 날 밤, 재봉틀의 구동장치에 있는 노루발을 보고, ‘바로 저거다’ 했다. 그 노루발의 원리에 착안해 카메라를 만들어 다음날 아침 오귀스트에게 보여주었다.

<공장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당신들이 처음 찍은 시네마토그라프로 알려졌는데.

→ (오귀스트) 시네마토그라프는 촬영과 인화, 영사를 다 할 수 있는 기계다. 따라서 우리가 맨 처음 촬영을 시도한 것은 당연하다. 찍은 필름이 있어야 인화도 하고 영사도 하니까. 뭘 찍어야 할지 잘 몰랐다. 그래서 일단 우리 주위를 찍어보자는 생각에서 아버지의 공장문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찍었다. 또 <아이의 점심시간>에 등장하는 가족은 바로 나의 가족이고 <카드놀이>에는 내 아버지와 장인이 함께 출연한다. 하지만 만날 이런 것들만 보여줄 수는 없다. 뭘 찍어서 보여줘야 할지가 우리의 가장 커다란 고민거리다.

앞으로 계획은.

→ (오귀스트) 외국에 직접 시네마토그라프를 보낼 계획이다. 오는 2월에는 아버지 친구인 마술사 펠리시앙 트루웨이의 주선으로 시네마토그라프가 런던 왕립기술학교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이어 3월에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네마토그라프가 초연될 거다. 그렇게 사업을 확장할 예정인데, 루이가 얼마나 협조할지 잘 모르겠다. (웃음) 루이는 여전히 시네마토그라프 사업보다는 발명에 관심이 많다.

→ (루이) 사실이다. 천연색 사진, 음향으로 비행기의 위치를 측정하는 기계 등 나의 손길을 기대하는 발명의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장난감에 언제 식상해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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