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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로스 감독의 <플레전트빌>
2002-10-31

가족없이 오래오래,행복하게

Pleasantville, 1998년감독 게리 로스 출연 토비 맥과이어

SBS 11월1일(금) 밤 1시5분

‘과거로 돌아가기.’ 1980년대 이후 미국영화는 같은 모티브를 즐겨 썼다.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페기 수 결혼하다> 등은 모두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과거로 돌아가서 붕괴 직전의 가족을 구하거나 행복했던 시절로 복귀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영화가 특정시대에 노스탤지어를 품고 있음을 말한다. 질서정연하고, 고전적인 미가 예찬되며 미국의 꿈이 살아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플레전트빌> 역시 비슷하다. 그럼에도 영화를 꼼꼼하게 보고 있노라면 꽤나 역설적인 유머를 발견하게 된다.

주인공은 데이빗과 제니퍼. 데이빗의 유일한 재미는 TV시트콤을 보는 것이다. <플레전트빌>이라는 시트콤의 광팬이다. 동생 제니퍼는 데이빗과 성격이 전혀 다른데 남자친구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제니퍼와 데이빗이 TV리모컨을 망가뜨린 뒤 수리공이 방문해 신비한 리모컨을 건네준다. 아이들은 리모컨을 작동한 뒤 TV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플레전트빌>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다. 데이빗은 질겁하지만 곧 현실을 깨닫고 적응하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제니퍼는 시트콤의 세계에 갇힌 것에 불만을 품는다.

<플레전트빌>에서 데이빗은 묘한 체험을 한다. TV 속 세상은 요지경이다. 농구공을 아무렇게 던져도 골대에 들어가고, 사람들은 정해진 질서를 거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근엄하기 짝이 없는 시대다. 1990년대의 악동들이 이 세계를 용납할 리 없다. 데이빗은 도서관의 빈껍데기에 불과하던 책들에 내용을 불어넣는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줄거리를 읊으면 책에 스르륵 내용이 새겨지는 것. 제니퍼는 발칙하게도, 섹스를 널리 전파한다. 이후 플레전트빌이라는 마을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섹스를 경험한 뒤 색채감각을 체득한다. 흑백과 컬러가 공존하는 <플레전트빌>의 시각적 구성은, 참신하다. 부분적으로 원색의 색감이 배어 있는 흑백화면의 화사함이란. <빅>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게리 로스 감독은 이 영화를 인상적인 장편 데뷔작 중 한편으로 만들었다.

“마을에서 무언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플레전트빌>은 전체적인 갈등 구조는 약한 드라마다. 그나마 후반부를 박진감 있게 하는 것은 보수적인 어른들, 변화를 지지하는 젊은이들 사이의 갈등 정도다. 마을 시장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과거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들여다보도록 하는 은유에 다름 아니다.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플레전트빌>이 “가부장적 권위의 회복”을 지지하거나 “가정의 복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 다들 제 갈길을 가고 궁극적으로 가족은 보기좋게 해체된다. 그것이 진짜 해피엔딩이 된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