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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민수 PD-노희경 작가가 말하는 <고독>(1)
2002-11-01

˝무모한 젊음에의 청/춘/예/찬˝

“감독님, 요즘 사람 얼굴이 아니야.” 연이은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표민수 감독은 평소보다 족히 4, 5kg은 빠진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걱정하는 노희경 작가 역시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닌 듯했다. “영혼이 아니라 몸으로 일해서 살이 빠지는 것”이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이들은 정말로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아프게” 새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바보같은 사랑> 이후 공식적으로는 3년 만에 이루어진 만남이지만 끊임없는 대화와 고민을 나누었던 이들이기에, 두 사람과의 인터뷰는 기자의 질문에 PD와 작가가 답하는, 흔한 인터뷰 형식에서 이내 벗어나고 말았다. 결국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나” 기자보다는 서로를 향해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는 그들 사이에 끼어 잠시 엿들을 수밖에.

<바보같은 사랑> 끝나고 햇수로 2년 만입니다. <고독>은 언제부터 고민된 이야기였나요.

표민수: 그 사이 저는 이금림 작가와 <푸른 안개>를 했고 노희경 작가는 이종한PD와 50부작 <화려한 시절>을 끝냈어요. 작품을 안 해도 늘 서로 작품 모니터해주고 만나고 전화하고 그러니까 고민의 시작점이 언제부터였는지는 말하기 어렵네요. 4월에 기획회의에 들어갔고 노 작가는 <화려한 시절> 끝나자마자 쉴틈없이 대본쓰기를 했어요. 보통은 대본을 거의 마친 상태에서 촬영이 들어가는 편인데 이번엔 좀 늦은 편이에요. 다른 팀들에 비하면 빠른 편이지만 8회 대본 나올 때 4회 촬영 나가는 정도죠.

바깥나들이 뒤 서로에게 변화가 있나요.

표민수: 있어요. 옛날보다 덜 싸워요. (웃음) 신변상의 변화라면 제가 KBS를 나와서 프로덕션에서 제작을 하게 된 것이고. 글쎄… 많이 변한 건 없는 것 같은데요.

‘고독’이란 단어가 의외로 생소하고 낯설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노희경: 고독이란 말, 어느새 문학적으로 쓰이는 걸 제외하면 일상생활에서 잘 쓰이지 않는 말이잖아요. 그러나 사랑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고독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온갖 편견덩어리의 세상에 맞서서 싸울지라도 내 사랑을 고독하지 않게 만드는 것.

워낙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된 PD와 작가라 오랫동안 지켜보던 시청자들에 대한 부담이 클 것 같은데요.

표민수: 강장수 촬영감독이 하루는 농담으로 “어! 이렇게 찍으면 <거짓말> 3회 24신에 나온 컷과 같지 않나요” 뭐 이렇게 물을 것 같다고 하던데요. (웃음) 워낙 전작들을 우리보다 열심히 보고 생각하고 느낀 마니아들이 많아서인지 더 잘 만들어야 하고 반복되지 않으려고 하는 부담은 있어요.

“말은 중요하지 않아요”

경민(이미숙)과 영우(류승범)와 진영(서원)의 관계가 <거짓말>의 성우(배종옥), 준희(이성재), 은수(유호정)와 닮았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노희경: 좀 달라요. 아무리 유부남이라는 제약이 있었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성우와 준희가 팔짱끼고 다닌다고 이상하게 보지는 않잖아요. 하지만 영우와 경민은 15살이나 차이나는, 그것도 여자가 연상인 관계예요. 보기에 따라 엄마 같을수도, 이모와 조카 같을 수도 있는 거죠. 준희와 성우가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였다면 영우는 경민에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일 수밖에 없어요. 주고받는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워요. 그렇지 못하는 건 또 얼마나 비극이에요. <거짓말>은 사랑만 고민하면 되었지만 <고독>은 고민할 게 너무 많아요. 영우에게는 그 사랑을 반대하는 가족들이 있고 경민에겐 자식도 있지 미혼모라는 입장도 있지….

표민수: 그렇죠. 덥석 받아들이자니 뻔뻔하고 가만히 지켜보자니 미안한. 경민은 텅 빈 고목 같아요. 겉에서 보면 멀쩡한데 속을 베어보면 텅 빈.

노희경: 그리고 은수는 준희가 아니라면 성우와 아무런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었지만 진영은 영우가 알기 전부터 경민을 알아왔고 자신의 삶의 우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사람에게 사랑하는 이를 뺏긴 거라는 이중의 아픔이 있어요. 경민 역시 아끼는 후배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있구요. <거짓말>보다 인물들의 감정은 좀더 복잡한 편이죠.

<고독>은 어떤 드라마인가죽음 앞에서 싸우며, 사랑하며

독일 뮌헨에서 이미지컨설팅을 공부하고 돌아온 영우(류승범)는 제주도로 떠난 자전거여행에서 우연히 경민(이미숙)을 만나게 된다. 어딘가 낯이 익은 이 여자. 바로 몇년 전 제주에서 갑작스런 폭우를 피하기 위해 신세를 졌던 별장의 주인이었던 여자다. 쉽사리 빈틈을 보이지 않지만 따뜻하게 미소지을 줄 아는 경민을 보며 영우는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되고 “앞으로 만나고 싶다”는 당돌한 프로포즈를 건넨다. 그러나 경민은 영우의 프로포즈를 어린 친구의 치기어린 장난 정도로 치부하고 그가 건넨 전화번호 적힌 쪽지를 휴지통에 버린다. 영우는 회사중역으로 일하다가 퇴직하고 그 회사의 경비가 된 아버지 민 선생(주현)과 매일 여자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바람둥이 형 영철(최성민), 그리고 아버지 친구의 딸이자 어린 시절부터 남매처럼 자란 진영(서원)과 함께 살고 있다. 진영의 오빠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아버지가 퇴직금을 타기 위해 학교를 그만두고 낙향하게 되고 진영은 평소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르던 민 선생 집에 함께 살게 된 것이다. 민 선생은 구김살 없이 밝고 착한 진영이 영우의 짝이 되길 바란다. 이런 생각은 진영도 마찬가지. 친구처럼 생각했던 영우가 서서히 좋아지는 것이다. 유학을 마친 영우는 진영이 일하는 CI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그곳에서 이사로 있는 경민과 다시 한번 조우한다. 경민은 앞으로 자신을 “여자로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지만 영우는 “당신이 40이 되든 50이 되든, 내가 사랑하는 한 당신은 여자”라며 자신의 사랑에 한치도 흔들림 없는 태도를 취한다. 첫사랑과의 사이에서 생긴 딸 정아를 홀로 낳아 키우며 어느새 “사랑도 귀찮아질 나이”가 되어버린 경민. 무미건조한 휴대폰 벨소리만큼이나 변화없던 그녀의 삶이 영우로 인해 파문이 일 무렵, “잊어주는 게 가장 큰 복수”라고 생각해왔던 정아의 생부, 은석(홍요섭)이 귀국하게 된다. 경민에게 자신과의 사이에서 생긴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은석은 법적으로 정아의 양육권을 주장하게 되고 이런 가운데 경민은 병원으로부터 전이성난소암이라는 통고를 받게 된다.이제 경민은 쉽게 인정받지 못할 사랑과 죽음을 향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우는 그런 그녀를 ‘고독’하지 않게 할 젊음과 사랑이 있다.

<고독>의 캐스팅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울려 전혀 새로운 맛을 내는 퓨전요리 같다. 장난기 가득한 소년 같은 이미지의 류승범이 이미숙과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등장한다고 했을 때 쉽게 그림을 그려내지 못했던 시청자들이라도 방송을 통해 묘한 하모니를 이루어내는 그들과 이미 만났을 터이다. 또한 <나쁜 남자>를 통해 다소 어두운 분위기로 기억되었던 서원 역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로 밝고 명랑한 진영 역을 소화해내고 있다. 강장수 촬영감독, 이용호 조명감독, 최완희 음악감독 등 <거짓말>과 <바보같은 사랑>에서 작업을 해왔던 오랜 스탭들이 다시 뭉친 <고독>은 1회 시청률이 4%대였던 <거짓말>과 <허준>과 맞붙어 “화면조정시간”보다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바보같은 사랑>의 악몽을 깨고 첫회 시청률 8.4%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고 있다. 10월21일 첫 방송되었고 매주 월·화요일 밤 9시50분부터 70분 동안 20부작으로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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