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김종학-송지나 <대망> -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린 모던한 사극
2002-11-01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든다˝

<모래시계>의 혜린(고현정)이 슬픈 눈으로 끌려가던 작은 기차역 정동진이 시끌벅적한 관광지로 바뀌는 긴 시간 동안, ‘신화’라고 불렸던 드라마를 세상에 내놓은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길을 향해 걷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멀리 바라보는 봉우리가 같은 길벗은 다시 만나게 마련이다. 8년 만에 만난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는 지난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서로의 걸음걸이며 보폭, 쉬어가는 순간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대망>의 집필 때문에 날아와 “거의 감금생활처럼” 두문불출 바쁘게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송지나 작가와 “숨쉬는 시간만 빼고 모든 시간을 <대망>에 바치고 있다”는 김종학 감독과의 인터뷰는 각각 이메일과 사무실에서 따로 진행되긴 했지만, 비슷한 질문에 대한 이들의 답은 거의 짠 듯이 일치했다. 모래시계는 멈춰져 있었던 게 아니었다.

김종학 PD, 대망을 말하다

<백야 3.98> 이후 5년 만이다. 현장을 오래 비운 데 대한 불안함은 없었나.

- 물론 빨리 작품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현장을 떠난 데 대한 불안함은 없었다. 김종학프로덕션 이름하에 <고스트> <황금시대> <아름다운 날들> <신화> <유리구두> 등의 작품이 꾸준히 제작되었기 때문에 결국 연출작은 없었지만 늘 현장에 있었던 셈이었다. <대망>을 준비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지난해 방송되었어야 하는 건데 대본이며 제작상황이 조금 딜레이되었던 것뿐이다.

기존 사극과는 호흡이 다른 느낌이다. 어떤 차별점을 두고 연출하고 있나.

→ 기존 사극의 정체감을 벗어난, 젊은이들 역시 즐겨보는 모던한 사극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보통 사극하면 배우나 시청층의 나이대를 높이는데, 이 역시 사극의 정치성이라고 볼 수 있겠지…. 여하튼 이순신, 세종대왕 같은 인물말고도 이 땅을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되, 그 방식 역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공감하고 같이 느끼는 식으로 끌어가고 싶었다. 또한 시대와 공간이 모호한 편이라 시대에 묶이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을 얻었고, 현대물로 갈 경우 저 역할은 실제의 누구네, 라고 대입하거나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상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들었는데 기획으로 보자면 <상도>보다 훨씬 이전에 나온 이야기다.

배우들 캐스팅에 특별히 중점을 둔 부분이 있었나.

→ 장혁은 얼빵한 듯, 모자란 듯, 능수능란하진 않지만 왠지 착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재영이란 인물 역시 거창하게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 이런 건 아닌데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돈이라도 쥐어주고 싶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면 뒷골 땅겨서 돌아서고 마는 그런 인물이다. 너무 영리해 보이고 약아 보이는 배우들은 이에 맞지 않았다. 여진은 시대가 자신을 눌러도 꼿꼿할 것 같은 여자다. 이요원에게서는 요즘 젊은 배우들 같지 않은 권위가 느껴졌다. 손예진의 캐스팅은 조금 늦게 결정났는데 대사에도 나오듯 “맑은 눈을 가진”배우였다.

하지만 그동안 작업해왔던 연기자들에 비해 <대망>의 연기자들은 유난히 젊고 어리다. 디렉팅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동안 트렌디드라마 연기나 즉흥연기를 해오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극에다 정극을 하려니 처음엔 연기톤을 하나하나 잡아줘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엄숙함과 묵직함을 올려놓기에 저들의 어깨가 너무 약하다는 생각도 했었고…. 하지만 한두달 연습하는 과정을 거치며 많이 나아져서 11회쯤 대본이 나온 지금은 훨씬 유연해졌다.

재영과 시영의 대결구도가 서서히 첨예해질 것 같다. 액션신이 많은데다가 경제에 관한 부분도 많고 남자드라마란 느낌이 강하다.

→ 물론 드라마가 한재석과 장혁, 즉 시영과 재영이라는 두 형제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긴 하지만 결국 이건 사랑 이야기고 멜로드라마다. 여진과 동희라는 대비되는 여성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질 것이고 이 네 사람을 둘러싼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갈 거다. 결국 사회적 환경이나 경제적 환경은 드라마의 배경일 뿐이다.

1995년 <모래시계> 이후 송지나 작가와 김종학 감독은 각자 다른 드라마들을 쓰고 연출했다. 늘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던 박상원이 아버지 역으로 나올 만큼, 8년은 긴 시간이다. 둘도 없는 짝패라고 해도 떨어져서 일하는 동안 변한 점은 없는 것 같나.

→ 모든 일에는 예열이 필요한 것 같다. 초반엔 작업에 필요한 히팅시간이 걸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여명의 눈동자>나 <모래시계>를 돌이켜보아도 늘 그런 시간은 필요했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송지나 작가가 가진 감성이나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 나와 완벽히 합일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껏 몸이 거부하는 대본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는 편이다. 그러나 송 작가의 대본은 처음부터 몸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와의 작업은 늘 흥분되고 기다려진다.

<대망>은 어떤 드라마인가경제사극의 탈을 쓴 멜로드라마

조선 중후기 정도, 정확한 시대를 규정짓긴 어려운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대망>은 쉽게 ‘경제사극’이라는 말로 설명되고 있지만 속으로

파고들면 멜로드라마의 기본 골격 위에 그리스 비극, 영웅담, 무협소설 등의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는 드라마다. 인물의 배치는 크게 차가운 형

시영과 따뜻한 동생 재영이라는 남자들간의 대결구도를 한축에, 여성스럽고 꼿꼿한 여진과 남자같이 털털한 동희의 미묘한 경쟁구도를 다른 한축에

놓는다. 또한 이 네 사람 사이에 엇갈리는 애정전선이 극을 이끌어나가는 동력이다. 젊은 세대들의 이런 관계 위에는 재물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인 박휘찬과 상도를 깨우친 바른 상인 최선재라는 또 하나의 대결구도를 짜놓고 있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묘수를 품은 채 행동하는 편이라 극의 초반부는 다수의 등장인물과 저마다의 사연들로 다소 어려운 느낌을 주고 있지만 작가의 표현대로 ‘숨은그림찾기’같은

파편들이 뒤로 갈수록 하나하나씩 맞아떨어지며 그림의 윤곽이 드러나는 순간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HD로 촬영되는 유려한 드라마

영상은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러브스토리> 등을 통해 서정적이면서 스케일 있는 화면을 선보였던 서득원 촬영감독이 맡았고, 화려한 검술뿐

아니라 하늘을 날고 창공을 찌르는 듯한 와이어 무협액션의 뒤엔 정두홍 무술감독이 있다. 재영과 친구들이 어울려 활보하던 장터거리와 여진이 자주

들르는 약재상 외에도 상인들의 상거래 장면을 담은 근처 나루터 등 드라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야외촬영은 80억원을 투자해 충북 제천에

지어진 대규모 야외세트에서 촬영되고 있다. 지난 10월12일 첫 방송되었고 매주 토·일요일 밤 9시45분부터 10시50분까지 24부작으로 방영된다.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