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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뉴웨이브 총결산. 부산영화제 상영작 13편 미리보기(2)
2002-11-01

새로운 물결의 일대기

청소년 나타 靑少年 na咤 1992년 ┃ 106분 ┃ 감독 차이밍량

비가 내리는 타이베이의 밤거리, 십대 소년 아체는 공중전화 동전을 털어 오락실로 향한다. 같은 밤 무기력한 소년 강은 방에서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뜨린다. 차이밍량의 장편데뷔작 <청소년 나타>는 우연히 거리에서 조우한 이 두 아이의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다. 둘이 처음 만난 곳은 혼잡한 횡단보도 앞. 아체는 택시기사인 강의 아버지가 잔소리하는 데 화가 나 사이드미러를 박살내고, 옆자리에 있던 강은 오토바이를 탄 아체의 돌발적인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리고 강의 은밀한 동경과 복수가 시작된다. 차이밍량은 <하류> <구멍> 등을 함께한 배우 이강생이 강처럼 재수생이었던 시절, 거리에서 만난 이강생과 이 영화를 찍었다. 그만큼 <청소년 나타>는 배우와 감독이 느끼고 체험한 그대로의 타이베이를 반영하고 있다. 부모 세대에게 속했다는 든든한 의지도 없고, 몇년 뒤를 기다리게 하는 희망도 없어서, 아이들은 부엌바닥에 고인 물처럼 서서히 부패해갈지도 모른다. ‘나타’는 부모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중국신화 속 젊은 신의 이름. 차이밍량은 그 신의 방황에 기대 정체된 한 도시에서 이야기 하나를 추출해냈다.

보도 寶島大夢 1993 ┃ 80분 ┃ 감독 황밍추안

외딴섬 군부대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되는 장교 아키는 상관을 살해하고 달아난 일병 이산의 흔적을 뒤쫓다가 이상한 인물들과 마주친다. 이산이 자기 아들이라며 헤매다니는 중년 남자, 이상한 매력으로 군인들을 끌어들이는 여자, 누군지 모를 총잡이 보도. 여기에 죽은 대위가 남긴 기묘한 그림들은 아키의 꿈속에까지 파고들어 그를 혼란에 빠뜨리고, 서로 떨어져 있는 다섯 사람은 환상 속에서 혹은 현실 속에서 얽히기 시작한다. <보도>는 <보도대몽>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현실과 꿈이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조그만 섬에 갇혀 있는 군인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영화다. 이 영화를 연출한 황밍추안은 미국에서 광고로 경력을 쌓았으며 <보도>에서 독특한 영상의 흐름을 선보였다.

고독클럽 寂寞芳心俱樂部 1995년 ┃ 114분 ┃ 감독 이치엔

말로 내뱉지 못한 절망은 그만큼 더 밀도가 높아진다. 바람난 남편과 치매걸린 시어머니를 둔 중년 여성 첸. 그녀의 절망이 바로 그런 경우다. 욕정마저 식어버린 결혼과 단조로운 직장생활에 지친 그녀는 단정한 외모의 신입사원 론을 보며 활력을 얻지만, 론은 사실 게이다. 결국 첸의 작은 기쁨은 희극과 비극이 섞인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고독클럽>은 많은 캐릭터에게 비교적 공정한 비중을 배분하는 영화다. 그들은 모두 삶을 지루해하며, 영화 속에서 제각기 혼자 감상에 빠지는 시간을 맞는다. 그 순간을 끌어모아 눈물섞인 유머로 마감하는 <고독클럽>은 사소한 절망을 비웃지 않는 넓은 마음을 가졌다.

춘화몽로 春花夢露 1996년 ┃ 123분 ┃ 감독 린청셩

쿤쳉은 부모와 아내, 어린 딸과 함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 아내가 둘째아이를 낳다가 죽자 쿤쳉은 도시로 나가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모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즐긴다.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아이들도 제법 자라난 어느 날,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자 쿤쳉의 도시생활은 잠시 위기에 빠진다.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데, 쿤쳉은 다시 흙을 뒤집어써야 하는 밭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다가 극영화로 접어든 린청셩 감독은 그 자신이 농촌 출신이었다. 그 때문인지 가족을 버려뒀다는 죄책감과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이 충돌하는 고민이 절실하게 드러나 있다.

어둠속의 빛 黑暗之光 1999년 ┃ 102분 ┃ 감독 장초치

캉이는 방학을 맞아 타이베이에서 고향 킬룽으로 돌아온다. 그곳에는 교통사고로 맹인이 된 아버지와 정신지체아 남동생, 새어머니가 주민 대부분이 맹인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본토 사관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같은 건물에 이사온 아핑은 곧 캉이와 사랑에 빠지지만, 갱조직 보스의 아들 아림은 그들을 질투해 분쟁을 일으키고자 한다. 이 영화의 감독 장초치는 허우샤오시엔의 조감독을 거쳤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갱조직 사이의 칼부림이 있다고는 해도, <어둠속의 빛>은 장애가 있는 아마추어 배우들을 진실하게 포착하는 빈틈이 더욱 빛나는 영화다.

몽환부락 夢幻部落 2002년 ┃ 93분 ┃ 감독 청원탕

날개달린 우체부가 전해준 엽서. 와탄은 공사 현장에서 추락해 다리를 절게 되던 날 잃어버린 지갑이 10년 만에 시멘트덩이 속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그 지갑 속에서 오래 전 떠나버린 아내의 사진을 발견하고선 그녀의 흔적을 찾지만 홀로 돌아온다. 일식집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몸을 파는 청년 샤오모는 밤마다 자기 엄마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녀의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왠지 와탄의 기억과 겹치는 면이 있다. <몽환부락>은 청량한 녹색으로 처음 반을, 그늘진 녹색으로 나머지 반을 색칠하는 영화다. 잃어버린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 영화는 드라마를 알기 전에 먼저 색으로 마음을 두드린다.문석 ssony@hani.co.kr / 김현정 para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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