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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예고 애니메이션 프로젝트팀 `또기로딱`(2)
2002-11-02

1초를 위한 15장,15장을 위한 하나

<BABYTOPIA>는 클레이메이션이다. 팀원 중 한명이 시나리오를 쓰고 이를 각색회의를 통해 함께 다듬은 <GODOG>팀과 달리, <BABYTOPIA>팀은 학교 안에서 시나리오 공모를 해서 채택된 이야기를 취했다. 영상원 무대미술과에 진학한 졸업생 방주연의 작품으로, 처음 원작의 제목은 이었다고. ‘베이비토피아’라는 아기공장에서 한 부부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아기를 고른 뒤 역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아기를 기르게 한다는 이야기로, 위트와 현실비판적인 시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GODOG>이 장편을 압축한 듯한 깊이와 서사를 보여준다면, <BABYTOPIA>는 단편애니메이션다운 단단한 기승전결을 갖추고 있다. 작업은 1년에 걸쳐, 클레이로 만든 인물상을 ‘레진’이라는 소재로 주물을 떠서 입모양 등 움직임이 있는 부분의 다양한 표현기법을 이용해 만들고, 6mm 디지털카메라로 스톱모션을 촬영해 편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래그래 vs 툭탁툭탁, “인내가 필요해”

선화예고를 찾았을 때, 또기로딱팀은 ‘솔거관’의 컴퓨터실과 조소실에, <GODDOG>팀과 <BABYTOPIA>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먼저 <GODDOG>팀과의 만남. 이성환, 김원기, 요시카. 3명의 교복을 입지 않은 이들이 3학년 선배였고, 안은비, 최혜인, 김다미, 한윤진, 채정연, 정예림, 김초롱, 정혜정, 김희선이 교복을 입은 2학년들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이 무렵 지도교사 정흥철 선생님의 “꼬심”에 의해 21명이 모여 또기로딱 6기인 <GODOG>팀을 만들었고, 지난 5월 작품을 완성했다. 요시카는 이 팀의 감독(일반인 대상 영화제에 내기 위해 작품의 감독 크레딧에는 지도교사의 이름이 넣어져 있지만). 국적은 일본이고 가족과 함께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일본인 학생 요시카는 발랄한 2학년들과는 확연히 다른, <GODOG>의 분위기를 닮은 조숙한 인상을 풍겼다. 요시카는 영상에 관심이 많아 단편영화도 찍어본 경험이 있는 ‘시네키드’. 단편에 대해 물으니, “제목은 <벗>(but)이구요, 판타지에요”라고 수줍게 말한다. <GODOG> 팀의 ‘언니’로 21명이나 되는 대식구를 조용히 뒷받침했고, 이제는 영상원 멀티미디어과의 합격통지를 받아놓고 졸업을 기다리고 있다. 안은비와 김다미는 조감독을 맡았다. “애들 관리하고, 돈 걷고 뭐 그런 일을 했죠.”(안은비) 처음 시작할 때 자비를 조금씩 냈다는 얘기다. ‘관리’라는 말에 몇몇이 웃음을 터뜨리자, 진지하게 ‘관리’가 어떤 것인지 설명한다.

서로가 서로를 ‘관리’하고, 서로가 서로의 그림을 ‘지도’하며 작품의 완성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서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했던 시간. 감독이건 선배건 엄격하게 작업을 분담해 위계질서 속에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누구 한명이 이런 게 어때, 하면 좋아좋아 하고 다 그렇게 하”는, “라이트박스가 몇개 안 돼서 색칠팀이 많아진”, 그런 자연스럽고 즉각적인 방식의 작업을 하는 또기로딱에서 그러나‘팀장’과 ‘팀원’의 경계는 그리 크지 않았다. 크레딧에 표시된 ‘배역’은 크레딧을 위해 작품이 다 끝난 뒤 정한 것이라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었던 만큼, 이들은 일에 있어서 심각하지 않은 아이들다운 면모와 프로다운 진지한 면모를 지켜야 할 선을 잘 지키며 함께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정말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에요”(안은비), “큰코 다쳤어요”(김다미) ,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학교 내의 모임 정도란 생각에서 시작했다간 본인이나 상대방에게 잔인한 결과가 될 것”(요시카)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BABYTOPIA>팀은 <GODOG>팀과 또 다른 분위기의 집단이었다. 한결 얌전하고 조신한 분위기. 지난해 5월 “전에 (또기로딱 클레이를) 했던 친구의 친구” 등 19명이 김용진 지도교사 휘하에 모인 이 팀은, 아니나 다를까 2학년이 4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3학년으로 구성돼 있었다. 전공은 조소 전공자가 많은 편. 감독인 이두란, 단짝친구인 이지현과 한승주, 권효진, 박은아, 유주영, 송정민, 강윤정이 <BABYTOPIA> 소품이 아직도 여기저기 놓여 있는 조소실 한켠에 모였다. 1기 클레이팀에 참여한 이후 재미를 느껴 다시 2기 작업을 한 이두란은, <BABYTOPIA>팀의 프로.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보고 클레이를 해보고 싶어졌어요. 이게요, 하고 나면 되게 뿌듯해요”라고 의젓하게 말한다. 대학은 전공대로 조소과에 갈 생각이지만 클레이메이션은 계속하겠다고. 이 팀은 인물, 소품, 배경 등을 분담해 작업했는데, 권효진은 단연코 인물의 대가였다고 한다. 사람 캐릭터를 여러 명이 만들어서 ‘예선’을 거친 결과, 권효진의 것이 가장 좋은 게 많아 아예 인물을 담당했다고. 이두란과 마찬가지로 1기에 이어 다시 참여한 이지현은 무대와 집안, 건물 등을 맡았다. 한때 또기로딱을 그만둘까 하던 생각을 친구 한승주의 설득으로 접은 바 있다고.

또렷한 큰 위기가 없었다는 <GODOG>팀과 달리, <BABYTOPIA>팀에는 작품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엄마가 아기를 일으켜 세우는 장면이었어요. 선생님이 촬영해 놓은 걸 보았는데, 동작이 자연스럽지가 않고 아기가 후딱 일어나버리는 거예요.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선생님하고 결별하고 한동안 우리끼리만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해봐도 별로 나아지지 않더라구요. (웃음) 얼른 다시 선생님을 모셔왔죠. 우리끼리 한 거는 나중에 다 다시 해야 했어요. ” 자신의 카메라로 촬영과 편집을 맡아 도와준 지도교사 김용진 선생님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 작고 사소한 것 같지만, 나름대로 심각한 일이었던 모양. 그 얘기가 나오자 7명 아이들이 모두들 “아, 그 장면…” 하고 한마디씩 한다.

비범한 아이들의 특별한 추억

사실, 또기로딱의 애니메이션 작업에서 지도교사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다. 정흥철 선생님의 경우 두 작품에 들어갈 모든 음악을 직접 작곡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또기로딱의 주축은 아이들이다. 미래의 화가, 미래의 조각가, 미래의 애니메이터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손을 모아 길게는 1년 동안 거의 모든 개인시간을 톡톡 털어 완성해낸 또기로딱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에는, 한두명의 ‘천재’ 소년소녀가 ‘도끼로 탁’ 치듯 만들어냈다면 있을 수 없는 팀워크와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땐 누가 힘들어했었지, 이 목소리 연기를 할 땐, 누가 어떻게 했었지…. 이들의 작품 한 장면 한 장면에는 똑딱 하는 1초의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스무명이 함께했던 체험이 들어 있다. “우리는 그냥 평범한 아이들이에요”라고 <GODOG>팀의 누군가는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로 도망치기도 했어요”라고 <BABYTOPIA>의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시험 걱정, 내신 걱정에, 이들은 여느 고등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정말 평범한 학생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또기로딱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보냈던 시간은 단지 애니메이션이라는 하나의 작업 때문이 아니라도 그 공동체 체험으로 인해 특별했음에 틀림없다. <BABYTOPIA>의 김수연이 제작후기로 쓴, “완성된 작품을 보고 있으니 그동안의 일들이 생각난다”는 소박한 한 문장에는, 젊은 한철을 정말 힘겹게 추억으로 완성해 낸 이 평범하고도 특별한 아이들의 소감이, 그래서 가장 진솔하게 들어 있다. 글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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