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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예고 애니메이션 프로젝트팀 `또기로딱`(1)
2002-11-02

1초를 위한 15장,15장을 위한 하나

또기로딱 TOKIROTAK: ‘애니메이션은 1초라는 짧은 순간을 위해 15장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중노동이다’라는 의미로, ‘똑딱 사이에 15프레임’을 짧게 줄인 말.

처음에 그들의 애니메이션에서 ‘TOKIROTAK’이라고 영어철자로만 된 크레딧을 보았을 때, 왠지 그것이 ‘도끼로탁’으로 읽혀져야만 할 것 같았다. 그들의 작품이, 도무지 청소년영화제 출품작이라고, 그러니까 아직 18세 관람가의 영화는 공식적으로 못 보고 지내는 중인 ‘어린’ 이들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고, 그래서 이건 도깨비 방망이로 탁! 하고 쳐서 만들어낸 것 같다는, 그런 기분에서였다. 그러나 이들을 만나기 위해 선화예고 컴퓨터실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들이 어떤 특별한 천재들의 집단일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 엷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여기저기에 자유롭게 걸터앉아 있었는데, 첫눈에 그들은 아주 평범해 보였던 것이다. 여느 길에 걸어다니는 교복 입은 고등학생들과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 이들이 과연 저 심오한 내용의 걸출한 그림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이들이란 말인가라는 놀라움이 생길 정도였다.

‘또기로딱’은, 선화예고의 미술전공 학생들이 모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팀이다. 말 그대로 프로젝트 팀이어서, 그저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 그리고 나면 해체되고 또 다른 팀이 결성돼 다음 작품을 만드는, 그런 형식의 집단이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은 비공식 불법단체로서 지금까지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그들의 설명. 지난 99년 말, 동국대학교 청소년영화제 출품을 목적으로 처음 13명의 학생들이 모여 <인계외>라는 작품을 만들면서 생겼고, 정식 동아리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학교에서 거의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8기(클레이애니메이션은 3기)까지 결성이 돼 작품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각종 국내외 영화제에서 화려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또기로딱은, 청소년 애니메이션계에서는 명문 중의 명문이라 할 수 있다. <칼라큘라> <찻잔 속의 바다> 등이 또기로딱의 지난 팀들의 작품들. 올해에도 과 라는, 눈에 확 띄는 2편의 애니메이션이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GODOG> <BABYTOPIA>, 눈에 띄네

<GODOG>(갓독)은 남녀의 거친 정사신으로 시작한다. 여자의 신음소리에 맞추어 화면은 몇초 간격으로 ‘지지지’거린다. 그것은 바로 비대한 몸집의 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작은 고물텔레비전임이 밝혀지고, 신과 인간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가면을 쓴 신과 그 아래 사람들의 세상. 사람들은 신의 가면을 제 얼굴에도 써보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너도나도 가면을 얼굴에 쓴 이후, 세상은 혼탁해진다. 사람들은, 결국 가면을 가릴 또 하나의 가면, 제 자신의 얼굴의 가면을 주문해 가면 위에 쓴다. 그때서야 신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는 대사가 없이, 그림과 음악, 옹알이 같은 말소리, 그리고 약간의 영어 자막만으로 이 모든 것을 전달한다. 자연히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 쉽지가 않은데, 그 ‘방해’요소가 아이로니컬하게도 신경을 온통 빼앗아가버리는 그림 그 자체다. <GODOG>은 철학적이고 조숙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그림의 ‘숙성도’가 놀라운 작품이다. 21명이나 되는 이들이 모여 어떻게 하나의 그림체를 찾아냈을까. 시나리오와 캐릭터디자인을 담당한 이성환(고3. 4, 5기에도 참여)이 “베르나르 뷔페라는 화가가 있거든요. 그 사람 그림체 보여주고, 이런 게 어떨까, 했더니 다 좋다구 해서… 우리 나이엔 멋있다고… 가식인지…”하고 웅얼웅얼 그림체의 기원을 밝힌다. 베르나르 뷔페는 날카로운 선과 잿빛의 음울한 색감을 즐겨 사용한 프랑스의 화가. 일단 기본 그림체가 결정되자, 나머지는 각자의 스타일에 맡겨졌다고 한다. 딱딱한 회의 같은 것은 별로 없었다. “그냥 한 사람이 이런 건 어때, 하면 다 그러자구 하구… 견해 차 같은 거 별로 없었구요, 그냥 먼저 누가 해놓은 거 있으면 그거 보구 하구 그랬어요. ”(웃음) 김다미(고2. 손그림과 색칠 담당)의 말에 몇몇이 “귀찮아서요…”라고 말을 잇는다. 하지만 방학 때도 아침 9시면 모여 밤 11시 반 버스 막차가 다닐 때까지 작업을 했던 이들이 ‘귀차니스트’들은 아니다. 일일이 한 장면 한 장면 손으로 그린 연필 스케치에 펜선을 입히고 이것을 다시 스캔받아 포토숍으로 옮겨서 색칠하고 애니메이터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팅시키는 지난한 작업에서, 어쩌면 이들은 ‘척하면 척’하고 서로의 그림에 호흡을 맞추는 것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 결과, 너무 엄격하게 그림체를 통일하지 않은 점은 이 작품의 장점으로 남았다. 한 장면 한 장면 선이나 표현에서 스타일의 차이가 보이는데, 이는 그대로 그림을 그린 아이들의 각자의 스타일이 묻어 있는 것이다. “잘 보면요, 다 달라요…”라는 그들의 말대로, 심지어 “학교의 낙서로 얼룩진 벽이나 낡은 화판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만든 배경까지, 이 작품은 하나하나 다 다르고 그러면서 어우러진 그림들이 유연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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