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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의 DVD 파일] 무법자 조시 웨일즈
2002-11-04

피와 죽음의 시대를 향해 쏴라!

The Outlaw Josey Wales1976년,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출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치프 댄 조지, 손드라 록자막 한국어, 영어화면포맷 16:9 와이드 스크린오디오 돌비 디지털 5.1출시사 워너브러더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다섯 번째 감독작인 <무법자 조시 웨일즈>는 애초에는 필립 카우프만- <필사의 도전>(1982)과 <프라하의 봄>(1987)의 감독으로 잘 알려진 바로 그 사람- 이 연출을 맡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촬영이 시작된 지 며칠 안 되어 그는 여러모로 이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이스트우드와 의견의 불일치를 일으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나고 만다. 이스트우드는 이 영화의 원작인 <반항아 무법자 조시 웨일즈>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자신의 돈을 들여 그것의 영화화 판권을 사들인 터였다. 그처럼 이 프로젝트에 적지 않은 애정을 가졌던 그였으니 카우프만의 연출 방식이 옳건 그르건 관계없이 그것이 자신이 생각했던 방식과 맞지 않는다는 것은 큰 불만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스트우드는 스스로 메가폰을 잡고 이른바 ‘이스트우드 터치’라 불리는 자신의 방식대로 <무법자 조시 웨일즈>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은 단지 한편의 (웨스턴) 영화가 아니라 영화감독 이스트우드의 경력에서 일종의 전환점에 해당하는 중요한 영화 하나, 그리고 현대 웨스턴의 걸작들 가운데 하나였다.

남북전쟁이 거의 끝나갈 무렵, 미주리의 농부인 조시 웨일즈(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비정규 북군들이기도 한 한 무리의 폭도들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당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게 된다. 홀로 살아남아 마음속에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는 그의 앞에 남부군들이 나타난다. 조시는 이들과 합류해 전쟁을 치른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북군에 거의 넘어간 상태. 남군 잔당의 리더격인 플레처(존 버논)는 미합중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형식적인 절차를 치르기만 하면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북군으로부터 받았다며 동료들을 데리고 북군에 투항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몰살시키려는 북군의 비열한 술책에 넘어간 것이었다. 홀로 투항을 거부했던 조시는 이 몰살의 현장에 나타나 북군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고 도망간다. 덕분에 거액의 현상금이 붙은 그는 발을 붙이는 곳마다 자신을 살해하려는 이들과 마주쳐야만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연하는 대부분의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무법자 조시 웨일즈> 역시 그의 묵직한 존재감부터 눈에 들어오는 영화이다. 여기서 그가 연기하는 조시라는 캐릭터는 자신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많은 부분을 그대로 차용해 빚어낸 것이다. 이스트우드를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주었던 세르지오 레오네의 ‘달러 3부작’에서의 ‘무명(無名)의 사나이’와 마찬가지로 조시는 총쏘기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건맨이고, 행동에 비해 말하기를 아끼는 남자이며 자신의 도덕률을 중시하는 단독자(單獨者)이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전 이미지의 반복 같기도 한 이 캐릭터에다가 이스트우드는 미묘한 음영을 주어 그것을 좀더 세련되게 입체적인 것으로 만들어놓았다. 우선 조시는 ‘무명의 사나이’를 ‘역사’ 속에 밀어넣어 만들어낸 인물이다. 비록 이 영화가 본격적으로 역사를 문제삼는 영화라고 보기는 힘들 수도 있지만 여하튼 “피와 죽음의 시대”라는 역사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그의 동기와 고뇌 같은 것들에 한층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조시는 정말이지 단독자였던 ‘무명의 사나이’와 달리 그 자신에게 동료들이 부과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그래서 앞에서 그가 단독자라고 했던 것은 기질상으로 그렇다, 라고 정정해야 한다). 조시의 도주로를 따라가는 이 로드무비에서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길동무를 늘려간다. 흥미롭게도 ‘무명의 사나이’에게 (일시적) 동료가 있다면 그건 대개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는 남자들이었던 데 반해 조시의 동료가 되는 이들은 인디언 노인과 여자, 기반을 잃어버린 할머니와 손녀, 심지어는 길 잃은 사냥개에 이르기까지 온통 어떤 식으로든 버림받은 존재들이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어버린 조시는 이들과 함께 가족을 복원해낸다(이스트우드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가족을 ‘상속받는다’). 결국 <무법자 조시 웨일즈>는 황폐한 시대에 커뮤니티를 복구하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이다.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한껏 빛을 발하는 이 걸작 웨스턴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는 조시가 코만치 인디언 추장과 대면할 때일 것이다. 여기서 동류에 속하는 이 두 전사는 삶과 죽음의 투쟁에서 삶의 가치를 선택한다. 워낙 그림자 속에 드리워진 과묵한 표정 때문에 분명하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조시는 복수만을 생각하는 킬러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걱정하는 주인공으로 미묘한 변화를 겪었던 것이다. 우리는 나중에 <용서받지 못한 자>(1992)에서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안티 히어로 이미지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보게 되겠지만 <무법자 조시 웨일즈>는 그런 성찰이 굳이 그리 멀리까지 가야 하는 게 아님을 알려준다. 홍성남/ 영화평론가 gnosis88@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