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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엑스레이 그리고 비디오테이프
2002-11-13

친애하는 영화 예비군 Y는 치통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새다 결국 시내의 유명 치과를 찾았다. 치과는 넓고 아주 깨끗했다. 사람이 많아서 접수한 지 1시간이 지나서야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깐깐하게 생긴 간호사가 턱 앞에서 180도 회전하는 파노라마식 엑스레이를 폼나게 조작했다. 다음엔 더 깐깐하게 생긴 간호사가 내시경처럼 렌즈와 전구가 달린 얇은 막대기로 Y의 치아를 샅샅이 관찰했다. Y 앞에 놓인 24인치 TV모니터엔 한번도 스케일링한 적 없는 누런 치아들 속에 뿌리만 남은 어금니와 완전히 썩어 분화구처럼 구멍이 뻥 뚫린 사랑니가 빈곤의 상징처럼 거대하게 드러났다. 간호사는 가장 처참한 4개의 컷을 선별했고 곧 바로 포토 프린터로 출력했다. 상담 전문가로 보이는 여성이 간호사와 교대했다. 그녀는 엑스레이를 짧게 그러나 요점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나서는 프린트된 사진을 펼쳐놓고 각 부분을 금으로 봉할 때와 아말감으로 봉할 때의 장단점과 가격 차이를 하나하나 알기 쉽게 설명하고 Y의 대답을 유도해가며 견적서를 작성했다. Y는 비디오 화면과 사진이 보여준 자기 입 속 풍경에 수치심을 느끼면서 그녀가 권하는 조치에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Y는 치료비 200만원이 없으면서도 몇날 몇시에 아말감으로 ‘땜빵’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에 Y는 이 약속을 후회했다. 일단 충치를 뽑고 돈을 모아서 어금니를 봉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으로 Y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슬퍼졌다. 그는 내게 전화를 했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비디오는 엑스레이와 달리 환자에게 약한 의학적 정보(충치가 생겼는데…)를 주고 강한 미적 판단(누렇고 새까맣고 더럽고 추하다…)과 뒤섞이게 만든다. 상담 전문가의 설명이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부분에서 가장 친절하다는 것을 눈치채기에 Y는 너무 쪽팔렸던 것이다. 이지윤/ 비디오칼럼니스트 emptyba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