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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의 PIFF일기 - 불안한 스물의 실존을 사랑하다
2002-11-20

키워드로 쓴 나의 20대, 그리고 부산영화제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그러자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홍신자) 그리하여 나는 열흘간의 항해를 시작했다.

● 사람: 너는 또 하나의 나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뇌수를 짜내는 듯한 아이템 구상과 한 줄 쓰면 두 줄 막히는 기사 작성, 선배의 원고 칼질까지. 그 속에서 내가 만난 건 ‘사람’이었다. 영화도 결국 사람의 이야기며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것도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기자는 누구보다 인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어설픈 며칠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기자의 삶을 몸으로 먼저 받아들였다.

● 축제: 삶은 축제다

종종 생각한다. 내 삶은 축제여야 한다고. 죽는 순간까지 즐기겠다고. 저절로 살아지는 삶이 아닌,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했다. 기자라는 이름으로 지낸 일주일 동안, 나는 기삿감을 찾아 정신없이 길바닥을 헤매야만 했고, 단 몇 줄의 기사를 위해 몇 시간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내가 이 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 이건 축제다. 맘껏 즐기자.

● 젊음: 세상과 맞짱 뜨다

외줄 타듯 순간순간 버텨야 하는 스물 셋의 젊음이 버거워,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혹은 뭐든 해야만 할 듯했다. 어쩌면 ‘이 일은 바로 내 꺼야’라며 오만하게 기자단에 지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일을 거듭하며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마다 난 희열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 그래, 그래도 절망할 수 있단 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내 20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일 테지. 생채기를 남길지라도, 이 날선 시간들을 기꺼이 맞아 신나게 싸울 것이다. 실패할 시간과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얼마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나는 이 순간을 무척 그리워하겠지. 어쩌면 눈물이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20대를 화려하게 장식해 준 이 경험이 언젠가는 진짜 나의 일상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며 조심스레 앞날을 기대해본다. 꿈꿀 수 있는 특권이야말로 오늘이 내게 준 선물이므로.

글/ 티티엘 송시원 사진/ 티티엘 이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