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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대망>과 MBC <삼총사>를 보는 엉뚱한 시각
2002-11-21

이런 대통령,없을까?

SBS 드라마 <대망>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장사꾼 박휘찬(박상원)은 한 가지 꾀로 세 가지 잇속을 차리는 신묘한 재주를 부린다.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벼슬아치 일가를 몰살하고, 다른 벼슬아치와 결탁해 쌀 무역 독점권을 틀어쥐며, 이 과정에서 아들 박재영(장혁)의 저잣거리 친구들을 죽음에 몰아넣음으로써 아들에게 냉혹한 세상 이치를 깨우치려 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그들을 버려라. 그래야 강해진다. 강해지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아들이 대답한다. “아버지…, 그래야 강해지는 거라면, 저는 안 할래요.” 힘이 있으면 원치 않아도 주위에 사람이 모이고, 사돈의 팔촌의 옆집 친구까지 너나없이 친분을 과시하려 든다. 아버지는 부나방처럼 모여들던 사람들이 언제든 나약해진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생은 투쟁이며, 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 게임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들은 꿈을 꾼다. 돈도 안 되고 변하기도 쉬운 의리나 인정 따위에 망설임 없이 목숨을 건다. 우정이나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고, 생에서 중요한 것은 남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라 믿는다. 결국 철부지 아들은 자신과 세계관이 다른 아비의 품을 떠나 고된 방랑길에 오른다. 그리고 고리대금업자의 농간으로 끼니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던 날, 이렇게 중얼거린다. “참견하지 말자, 참견하지 말자, 참견하지 말자…. 아, 그런데 왜 자꾸 참견하고 싶어지냐!”아버지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반면, 아들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에 자꾸만 ‘참견하고 싶어서’ 돈 벌 궁리를 한다. 그러므로 이 아버지와 아들은 결코 화해할 수 없는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남보다 부유하고 힘있는 사람으로 살겠지만, 그 방법과 목적이 사뭇 다를 것이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탓인지, 날마다 보는 드라마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정치권력을 이미 가졌거나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대체로 이들과 뜨거운 연대감을 보이는 자본가들에 대해, 드라마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새삼 눈여겨보게 된다.

MBC에서 얼마 전 선보인 <삼총사>를 보면서도 그랬다. 정치인들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헌납한 재벌 회장이 “세계의 뒷골목을 떠돌다” 귀국하는 첫 장면. 양심선언을 하려는 재벌 회장의 귀국을 수많은 정치인들이 극구 반대하는 가운데 의문의 암살사건이 벌어진다. 비명횡사한 재벌 회장에게는 벤처사업가인 아들 박준기(류진)가 있고, 아들의 절친한 친구는 시민운동가 출신 국회의원 장범수(손지창)다. 이들은 과거에 한 여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대립했고 사회적인 신분차로 인해 갈등도 겪었지만, 암살의 배후를 밝히고 정경유착의 실체를 파헤치는 일에 의기투합할 예정이다. 그들의 뿌리깊은 애증의 시원이 어디인지, 차근차근 되짚어본 뒤에 시작될 일이긴 하지만.

공천이니 정경유착이니 하는 ‘정치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운 <삼총사>는 그렇다치더라도, 시공이 분명하지 않은 무협드라마 <대망>을 보면서도 오는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떠올리는 건 못 말릴 오지랖일 것이다. 그래도 드라마를 보면서 끊임없이 ‘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기껏 뽑아줬더니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방정맞게 날아다니는 철새 정치인 대신, <삼총사>의 장범수처럼 돈없고 배경도 없지만 할말은 하는 국회의원은 어디 없을까? 선거철만 되면 ‘차기 유망주’에게 무조건 몇십억씩 갖다 바치는 기업가들의 관행은 언제쯤 끝이 나려나 돈 안 드는 선거 하겠다던 이들이 선거법 개정에는 신경도 안쓰는 현실을 단숨에 뒤엎을 묘안은 없을까?

물론 이들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이러한 ‘딴 생각’ 내심 고대하며, ‘대선 바람’에 조금쯤 편승하려는 흑심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제작진의 의도는 적중한 셈인데, 그래도 순진하기 짝이 없는 딴 생각은 계속된다. <대망>의 박재영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에 진지하게 참견하고 싶어하는 대통령, 어디 없을까이미경/ <스카이라이프> 기자 friend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