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비디오 > 신작비디오
프레일티
2002-11-21

내겐 신의 목소리가 들려

Frailty, 2001년 감독 빌 팩스톤출연 빌 팩스톤, 매튜 매커너헤이, 파워스 부스, 루크 애스큐, 미시 크라이더장르 스릴러 (우성)

많은 연쇄살인범들은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살인을 하라는 신의 목소리, 혹은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은 다만 그의 하수인일 뿐이며, 결코 거역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심한 경우 그들은 살인현장에 ‘나를 제발 잡아줘’라는 문구를 남기기도 한다. <레드 드래곤>의 돌하이드 역시 명령을 내리는 자신의 또 다른 자아와 싸워보려 하지만 굴복한다. 많은 경우 그 목소리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들리는 것이다. 악마는 대개 우리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으니까.

하지만 가끔은 진짜 신의 목소리도 있는 모양이다. 연쇄살인범 ‘신의 손’을 수사하는 FBI 수사관 웨슬리 도일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펜튼 메익스(매튜 매커너헤이)라고 이름을 밝힌 남자는 ‘신의 손’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어제 자살한 자신의 동생 아담이 바로 연쇄살인범이라고 한다. 믿지 않는 웨슬리에게 펜튼은 과거를 말해준다. 1979년, 12살인 펜튼과 9살의 아담은 아버지(빌 팩스톤)과 함께 시골의 소도시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아버지는 세상의 악마를 찾아 처단하라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해준다. 아버지는 천사가 보내준 악마의 명단에 있는 이름들을 찾아 죽이기 시작한다. 펜튼은 아버지가 미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리 반발해도 소용없다. 더 끔찍한 말도 한다. 천사는 너를 악마라고 했지만 나는 너를 믿는다고. 그러나 펜튼이 데리고 온 보안관을 죽인 아버지는 펜튼을 지하실에 감금한다. 기도를 하고, 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까지 안에 있으라면서. 일주일 넘게 물만 마시며 지하실에서 갇혀 있던 펜튼은 환상을 보고 마침내 아버지를 따르게 된다.

<트위스터> <심플 플랜> 등에 나왔던 빌 팩스톤의 감독 데뷔작 <프레일티>는 집요하게 한 남자의 증언을 파고든다.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아버지의 이야기. 그는 정말로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아버지가 그 목소리를 ‘진실’이라 믿었고, 수없이 죽인 사람들도 악마라 믿은 것은 분명하다. 펜튼 때문에 보안관을 죽였을 때, 아버지는 처음으로 살인을 했다고 절망한다. 아버지가 펜튼에게 벌을 내린 것은 그 때문이다. <프레일티>는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아버지는 단지 정신병자에 불과한가, 아니면 뭔가 거대한 ‘사인’의 하나인가. 모든 것을 세밀하게 그려내려는 빌 팩스톤의 욕심 덕에 <프레일티>는 조금 지루하다. 마지막 반전도, 충격보다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로 멈춘다. 하지만 안정된 연기와 꽉 짜여진 시나리오 덕에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보기에는 괜찮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