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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Friday Night - 모은영 DVD 칼럼니스트
2002-11-21

밤은 가끔 마법을 부린다

<금요일 밤> Friday Night

프랑스, 2002년, 90분

감독 클레어 드니/ 22일 오후5시 메가박스6

 

숨쉬듯 익숙한 모든 것이 갑자기 너무도 낯설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만난 클레어 드니의 <금요일 밤>도 그런 낯설면서도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영화였다. 한 주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금요일 밤 누구도 예기치 못한 짧고도 강렬한 열정에 휘말려버린 두 주인공. 그들의 하루 밤의 모험은 계속되는 강행군에 조금은 지쳐있던 나에게도 한 모금의 청량음료 같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밖에는 분명 이글거리는 지중해의 태양과 눈부신 해변이 펼쳐져 있건만 좀비 마냥 어두컴컴한 극장에 틀어박혀 스크린 속의 생경한 언어를 해독키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처지라니. 옆자리 관객들의 낯선 속삭임마저 없었다면 이 곳이 베니스인지 부산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클레르 드니라는 이름 외에는 별반 기대 없이 습관처럼 어둠 속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는 사이 새삼 매력적인 영화와 마주할 때의 감흥이 되살아난다.

엠마뉘엘 베르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줄거리는 너무도 간단하다. 어느 금요일 밤, 예기치 않은 파업에 교통 지옥으로 변한 파리 시내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폭풍 같은 하루 밤 열정에 휘말린다는 것이 전부. 남자 친구와의 동거를 앞둔 여주인공 로르의 애초 계획도 간단했다. 짐을 싼 후 독신의 마지막 날을 친구와의 저녁식사로 마감하는 것이다. 하지만 차에 올라탄 순간부터 일상적인 그녀의 금요일은 온통 낯선 것으로 변한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경적 소리, 끝없이 늘어선 자동차의 행렬,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소음의 소용돌이 속에서 홀로 존재하듯 가만히 자신을 응시하는 한 남자. 그리고 로르는 이상한 나라에 들어선 앨리스처럼 한 순간에 가장 낯선 도시가 된 파리 시내를 방황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모든 신비한 경험을 로르의 시점에서 진행한다. 꽉 막힌 도로를 거꾸로 내달릴 때 그녀의 심리적인 속도감을 반영하듯 창 밖으로 휙휙 내달리는 풍경들, 숨도 쉴 수 없는 뜨거운 열정과 섬세함으로 그녀를 사로잡는 장도 기실 모든 여성이 바라는 이상적인 연인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영화의 처음 신경질적으로 짐을 싸던 그녀와 하룻밤 연인의 품에서 이토록 사랑스럽게 웃는 그녀가 과연 동일인이란 말인가. 그리고 중년의 육체가 이렇듯 아름다울 수 있었던가. 애초 절대 영화화 될 수 없다던 소설을 옮긴 이 영화는 아닌게 아니라 마치 한 편의 짧은 소설을 읽은 것 같은 긴장과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문득 저 앞에 영화제에 맞춰 제2의 신혼여행을 온 친구 부부의 모습이 보인다. 이 먼 곳에서 아는 이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에 잠깐 어지럼증을 느꼈지만 그래, 어차피 이 날은 신비함에 사로잡히는 날인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예견하듯 또 한번의 흐뭇한 미소를 자아내는 마지막 장면을 뒤로 하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로르의 금요일 밤의 마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모은영/ DVD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