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씨네스코프
<귀여워> 촬영현장
2002-11-24

“컷! 감독님 그때 내려오시는 게 아니고요. ”(이러쿵 저러쿵…) 감독이 감독에게 조심스레 설명을 한다.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이듯 영화촬영장의 감독은 하나일 터인데, 여기선 감독이 감독에게 연기지도를 하면서도 은근히 눈치를 본다. 물론 초보 연기자로서 첫발을 떼는 다른 감독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할 수만은 없을 것.

귀엽지 않은 가족의 꽤나 귀여운 이야기 <귀여워>의 촬영장이 차려진 서울 중구 황학동의 뒷골목, 이 영화의 김수현 감독이 ‘유령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상대편 감독의 정체는 바로 ‘문제적 감독’ 장선우. 연기자로선 처음으로 영화촬영장에 발을 들여놓은 장 감독은 여유있는 척했지만, 실은 긴장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맡은 장수로는 주연급 역할인데다가, 연출을 맡은 김수현 감독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 <꽃잎> <나쁜 영화>에서 연출부와 조감독으로 기용했던 까마득한 후배인 탓에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NG없이 무사히 촬영을 끝내야 하는 것. 게다가 후배거나 어쨌거나 결국 감독은 한명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머시기 역의 정재영이 구멍가게 앞에서 스포츠신문의 운세란을 보며 구시렁대는 동안 언덕길에서 내려와 촌철살인의 대사를 던져야 하는 장면. 장선우 감독의 타이밍이 잘 맞지 않고 연기가 어색하거나 다른 스탭이 실수를 저질러 촬영은 자꾸 삐걱거린다. 평소 촬영장 같으면 시원하게 말 한마디 던져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보겠지만, 장 감독은 조용히 모니터 앞으로 다가가 다소곳이 앉을 뿐이다.

서울 한복판, 고층 빌딩의 숲 대신 만물시장과 허름한 아파트가 구릉을 이루는 황학동을 배경으로 전직 박수무당 장수로(장선우)네 가족의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를 그리는 <귀여워>는 2003년 1월까지 촬영을 마치고 4월쯤 개봉할 예정이다. 사진 손홍주·글 문석

(왼쪽부터 차례로)

♣ 각자 다른 어머니를 가진 탓에 동갑내기인 3형제 963(김석훈), 머시기(정재영), 개코(박선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여성 순이(예지원)를 놓고 싸움을 벌이고, 여기에 장수로가 끼어들면서 이 ‘콩가루 집안’의 대소동은 꼭지점을 향한다. ♣ “진짜 열심히 하려구. 김현 기사가 편집본을 보더니 장 감독 연기 죽인다고 했다는데.” 유치찬란한 보랏빛 재킷과 허름한 추리닝 바지 차림이 낯설어 보이지 않는 장선우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 장수로와 판박이처럼 보인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 황학동 뒷골목에서 촬영되는 탓에 촬영진은 고생을 해야 했다. 특히 좁은 골목길을 통제하는 제작부, 연출부 스탭은 “죄송합니다”를 연발해야 했다.♣ 단편영화를 찍던 시절 오토바이 퀵서비스 생활, 견인차 운행을 하며 방황했다는 김수현 감독은 데뷔작을 통해 마음 속에 담아뒀던 비루하지만 소중한 것을 추슬러 세울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