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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개정판 나온 <씨네21 영화감독사전>
2002-11-28

영화사 100년을 만든 900인의 감독

모든 훌륭한 예술작품이 그러하듯이 좋은 영화는 한동안 사람의 안온한 일상을 뒤흔든다. 사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그 흔들림을 소화하는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나의 경우, 그 소화 행위는 감독사전을 펼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영화로부터 받은 재미와 감동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가 무엇보다 궁금해지는 까닭이다. 그리고 감독사전을 통해 그 영화의 전후사를 읽다보면 오로지 그 역사의 지평에서만 볼 수 있는 새로운 사실과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동안 가장 빠르게 또 가장 쉽게 나의 이런 갈증을 풀어주었던 것이 바로 <씨네21 영화감독사전>이었다. 사실 국내에서 출판된 한국어판 감독사전으로는 거의 유일무이한 것이었으므로 어찌보면 강요된 선택이었던 셈이다.

감독사전은 관객과 감독의 좀더 깊은 의사소통의 매개체이자 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가교이다. 또한 그것은 한 나라 영화문화의 폭과 깊이를 가늠케 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3년 전 <씨네21> 기자들과 필진들의 수고와 노력을 통해 이 땅에 처음으로 감독사전이 탄생했다. 그 초판의 머리말을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감독사전이 <씨네21>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된 사정과 배경을 알 수 있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고 했던가 감독사전은 일상적으로 ‘영화를 고르고 기사를 써야 하는’ <씨네21> 기자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실용서’였다.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 그 누구도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이 ‘지난한 작업’을 감히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당시 3년치만큼 쌓인 <씨네21>의 정보량’이라는 ‘기본 자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 그 기본 자산을 바탕으로 <씨네21> 창간 이후 데뷔했거나 신작을 발표한 주요 감독들을 포괄한 뒤, 빠진 부분을 외국의 감독사전()이나 국내 자료(<열려라 비디오 10000>, CD롬 <한국영화 75년사>)를 통해 보충하는 방식으로 국내외 영화감독 700명이 이 초판(총 615쪽)에 담기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씨네21 영화감독사전>은 단순한 외국 사전의 번역물로서가 아니라 그간 축적된 우리나라 영화문화 역량의 중간 결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초판이 나온 지 3년 만에 증보판이 새로이 나왔다. 사실 정확하게는 ‘3∼4년에 한 차례씩 수정보완판을 펴낼 계획’이었으므로 아직은 여유가 있었을 법도 한데, 만기가 되기 전에 성실하게 약속을 지킨 셈이다. 그만큼 자신이 한 약속을 늘 의식해왔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씨네21>이 이 작업에 부여한 의미와 사명감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3년 만에 나온 이번 증보판은 무려 802쪽이고, 그 부제는 ‘세계영화사 100년을 만든 감독 900인’이다. 다시 한번 지난 3년간의 신장된 우리의 영화문화가 결산된 셈이다. 탄생의 과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결코 이 사전은 건조하고 무색무취한 정보 전달의 한계로 자신을 가두어두지 않는다. 각 감독들에게 할당된 정보량의 불균등성과 내용에는 <씨네21> 자신의 시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감독사전의 가장 큰 매력이자 동시에 독자로서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기도 할 것이다.(한겨레신문사 펴냄, 2만8천원)변성찬/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