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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가난’의 굴레
2001-04-18

김소동 감독의 <돈>

1958년, 감독 김소동 출연 김승호

EBS 4월21일(토) 오전 11시50분

1958년은 한국영화에서 중요한 해로 꼽힌다. 한해 제작편수가 70편을 상회하면서 영화가 산업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했으며 김수용, 신상옥, 김기영 감독 등 한국영화 황금기를 일군 연출자들이 데뷔했거나 주요한 작품을 발표한 해이다. 1960년대로 이어지는 한국영화 전성기가 문을 연 셈이다. 김소동 감독의 <돈>은 손기현 원작을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김소동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와 비평가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 나운규 감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아리랑>을 만든 바 있다. 그는 토속적 소재를 영상으로 옮기면서 짧은 연출기간에도 불구하고,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을 만들었다.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오직 돈만이 애정을 휩쓸어가고 현실을 짓밟는 반역자다.” 당시 영화의 홍보문구에서 알 수 있듯 <돈>은 피폐한 농촌 풍경을 리얼리즘적 시선으로 고찰한 작품이다. 전쟁 이후 제작한 당시 한국영화 중에서 이렇듯 농촌사회를 암울하게 묘사한 영화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전원과 농촌에 대한 이상주의로 가득 찬 <흙>(1960) 같은 작품과 비교해봐도 <돈>의 비극성은 단연 두드러진다.

농부 봉수는 빚 때문에 딸 혼사비용을 마련하지 못한다. 봉수는 노름으로 가진 돈 전부를 잃고, 서울로 가서 사기당하는 처지에 몰린다. 한편, 봉수의 아들 영호는 옥경을 사랑하지만 옥경은 형편이 여의치 않아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옥경을 겁탈하려는 고리대금업자 억조는 실수로 길가에 돈을 흘리고 이를 주운 봉수는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억조와 대판 싸움을 벌인다. 이 와중에 억조가 목숨을 잃는다. <돈>은 가난한 자들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의 것을 탐하고 훔치게 되는 과정을 담는다. 한 농촌의 궁핍한 가족사를 축으로 노름과 치정, 그리고 살인의 과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이 영화는 드라마 짜임새가 탄탄한데 각색을 겸한 김소동 감독은 ‘가난’의 굴레에 갇힌 인물 군상을 통해 휴머니즘을 역설적으로 강조하면서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 종반에 옥경과 영호는 억울하게 살인누명을 쓰게 되지만 본인들은 영문조차 알지 못한다. 봉수 역의 김승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눌하고 순박하지만 경제적 관념이 도통 없는, 즉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마부>에서처럼 시대에 결박된 가부장을 연기한 그는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캐릭터의 어둡고 추악한 심리를 외부로 노출한다. 이런 점에서 <돈>은 운명의 대물림과 시대에 관한 이해 불가능성을 논한 영화로 보인다.

<돈>은 본격적인 리얼리즘영화라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영화 촬영을 실내와 실외에서 번갈아 했는데 스튜디오 촬영장면엔 부분적인 인공성이 눈에 띈다. 희곡 원작인 <돈>은 당시 국내 영화인들이 무대극 전통과 결별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다. <돈>에서 배우들 동선은 실내 촬영의 경우 연극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 반면 다른 점도 있다. 인물 움직임을 길게 찍기로 담아낸 점이라든가 배우가 카메라를 향해 말걸듯 정면을 응시한 채 대사하는 장면은 형식적 미학에 대한 연출자의 탐구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기술적 조악함이 아쉽긴 하지만, <돈>은 어떤 견지에선 일종의 ‘발견’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다.

김의찬 |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