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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고향
2002-12-04

신경숙의 이창

서울에 사는 사람들 중 70%가 서울을 고향이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는 신문기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 그렇구나. 서울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었다. 언젠가 어느 후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는 시골이 무섭단다. 특히나 시골에서 칠흑 같은 밤을 만나면 마치 이 세상의 끝에 온 것같이 두렵단다. 어쩌다 시골에 갔다가 서울 톨게이트에 들어서면 그때야 안심이 된다고 했다. 멀리 도시의 불빛이 휘황하게 반짝거리는 걸 보면 아, 집에 다 왔구나, 싶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서울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내겐 처음이어서 꽤나 인상깊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후배처럼 서울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서울에 발을 붙이고 살게 된 지가 이제 25년째다. 내 태생지보다 이 서울에서 십년을 더 산 셈이다. 이제는 태생지쪽의 지리보다 이 서울지리가 더 밝다. 서점이고 영화관이고 밥집이고 상점이고 간에 자주 찾아가게 되는 정든 장소도 이 서울에 훨씬 더 많다. 그동안 내가 살아봤던 집만 해도 이 서울에 열채는 넘게 있다. 사직터널 앞을 지나갈 때면 옆사람에게 옛날에 나 저기 살았었어, 나도 모르게 말한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은 그만 좀 해, 지겹지도 않아, 그런다. 어떤 사람과 데이트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 대학로 근처에서 놀다가는 뜬금없이 그 사람을 데리고 또 옛날에 살았던 동숭동의 집엘 가본 적도 있다.

길이 얼마나 달라졌던지 쉽게 찾지 못하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헤매다니다가 기껏 어느 골목에 서서는 삼층짜리 연립주택의 한 창문을 가리키며 나, 옛날에 저기, 살았었어요, 했다. 나에 이끌려 그 거리를 함께 헤맸던 그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다. 어디 중요한 데를 가는 모양이다, 했을 텐데 저기 살았었어요, 하고는 이제 가요, 하는 일이 계속될까 봐 어쩌면 그는 미리 가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지금은 다른 이가 살고 있는 곳을 가리키며 나, 옛날에 저기 살았었다, 고 말하는 일을 나는 계속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내게 그런 적이 없는 걸 보면 누구나 그러진 않을 텐데 대체 무슨 심리인지 나도 모르겠다.

삼청동에서 삼년쯤 살았던 방은 거리를 향해 창문이 나 있었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날 때면 그곳을 올려다보느라 걸음이 늦어진다. 그곳을 떠나온 지 십년도 넘는데 여전히 그 창문이 변하지 않은 채 그때처럼 남아 있는 게 나는 참 좋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집은 평창동에 있었다. 북악터널을 지나 어디 가던 길에 나도 모르게 그 옛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으로 차 방향을 자주 바꾸게 된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은 자동차를 그 집 아래 세워놓고서 잠시 그 집을 올려다보다고 올 뿐이다. 그 집을 떠나올 때 일부러 바깥으로 향해 나 있는 통창의 블라인드를 그대로 두고 오면서 새로 이사온 사람이 블라인드를 떼어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얼마 뒤 밤길에 가보았더니 그 블라인드 안에서 불빛이 은은하게 흘러나오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새로 이사 온 사람도 아마 그때의 나처럼 그 집에서 혼자 사는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끔 한낮에도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곤 했다. 블라인드 덕에 지나던 길에 들러서 그 집의 창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거기서 살던 때의 기분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그 창가를 서성거리며 오지 않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때의 내가 보이는 듯도 해서 울적해지기조차 한다. 이렇게 이 서울에 예전에 살았던 집을 여러 채 두고 있으면서도, 이따금 그곳을 지날 때면 잊지 못해 바라보고 응시하고 가보기까지 하면서도, 웬일인지 나는 태생지에 갈 때에나 “집에 가는” 느낌이다. 이제는 자주 내려가지 않는데도 그런다.

너무 오래 태생지에 못 가보고 있을 때는 입 안에서 무심코 “집에 한번 다녀와야 할 텐데” 웅얼거리는 나를 발견한다. 그곳의 집이라고 해봐야 예전의 모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데도 그러하다. 나무도 헛간도 마당도 다 사라져 전의 모습을 찾아볼 길이 없는데도 그러하다. 이제는 그곳에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그럴 마음이 거의 없는데도 ‘집’은 그곳에 있는 것 같은 이 마음은 무엇일까. 나는 아무래도 서울을 고향으로 여기며 살게 되긴 틀린 것 같다. 한껏 정이 들었는데도 그러하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여기에서 가출한 사람 마음으로 살다 갈 것 같다. 대체 맹렬하다면 맹렬하게 살아온 서울에서 보낸 25년이 태생지에서 보낸 15년을 못 이겨먹는 이유가 뭘까. 이제 그곳엔 아는 사람이라곤 손가락으로 셀 정도일 뿐인데도 말이다.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