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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안팍 흑백소동
2001-04-19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미국 내 반향을 일으킨 <리멤버 타이탄>

▶<리멤버 타이탄> 공식 홈페이지

미국을 배경으로 흑백인종간의 갈등을 다룬 영화들은 이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해갈 정도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인종문제는 미국인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인 것이다. 그런 뜨거운 감자를 스크린으로 옮기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현실에 대한 냉정한

고찰을 통해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타급 배우들을 동원해 블록버스터로 제작되는 일부 영화들의 경우엔, 인종문제가

가지고 있는 팽팽한 긴장감을 흥행에 활용하려는 계산이 먼저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라면 최근작으로는 새뮤얼 잭슨이 주연한

블랙스플로테이션 영화 <샤프트>, 몇년된 작품으로는 역시 새뮤얼 잭슨 주연의 <타임 투 킬>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인종문제를 좀 다르게 접근하려는 흐름이 할리우드에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할리우드 상업영화의 한계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종문제에 대해 조금 더 세심한 접근방식을 택하는 작품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로는 지난해

개봉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를 들 수 있다. 한 흑인 고교생 농구 선수와 은둔생활을 하는 노년의 백인

작가사이에서 생겨나는 우정을 통해 인종문제의 해법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의 전작인 <굿 윌 헌팅>의 그림자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인종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만큼은 구스 반 산트의 이름값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또다른 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관객에게 인종문제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기를 권유하는 스타일의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해군 최초의 흑인 잠수부였던 칼 브레셔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긴 쿠바 구딩 주니어와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맨 오브 오너>와 버지니아주 한 고등학교 미식축구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덴젤 워싱턴 주연의 <리벰버 타이탄>이

그 대표적인 영화들. 특히 이렇게 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의 경우 살인, 폭동, 복수 등 자극적인 소재들을 찾기보다는 서로 부딪히며

이해해가는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종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제안이 녹아들어 있기 마련이다.

그중 <리멤버 타이탄>의 경우엔 스포츠영화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머쥔 행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CNNSI가 지난해 ‘최고의 스포츠영화’라는 타이틀을 헌사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사실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살아 있지 못하고 인종문제가 단순한 하나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평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메이저스튜디오, 그중에서도

디즈니에서 인종문제를 이 이상 차분하게 녹아들인 영화를 바란다는 것은, 스파이크 리 감독에게 <베가 번스의 전설> 같은 영화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어불성설이다.

외국인으로서 우리가 <리멤버 타이탄>을 비평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70년대 초에 있었던

사회적인 혼란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는 존 F. 케네디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이 베트남전에 지속적인 참전 의사를

밝히자, 전 미국 특히 미국의 학교들은 반전운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던 중이었다. 특히 1970년 4월30일 켄트스테이트대학에서 반전

데모대와 경찰이 충돌, 비무장 상태의 학생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베트남전과 인권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동시에 ‘분리시키지만 평등한’(Separate but Equal)이라는 사실상의 인종차별 정책으로 인해 흑인 학생들이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수많은 흑인들이 베트남에서의 백인들보다 더 많이 죽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흑인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진 상태였다. 결국 그런 배경으로 인해 1971년 4월 미국 연방법원은 멀리 떨어진 흑인학교에 가야 하는 자신의 아들을 집

근처의 백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흑인 신학교수 다리우스 스완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그 유명한 ‘스완 판결’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 스완 판결이 바로 <리멤버 타이탄>의 무대가 되는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시의 T. C. 윌리엄스 고교를 흑백통합고교로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게 통합된 학교시스템으로 인해 영화 속에서처럼 전 미국은 그야말로 혼란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발매된 <리멤버 타이탄>의 DVD에 포함된 제작과정 다큐멘터리와 홈페이지에 공개된 당시 실존 인물들의 인터뷰 또한,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영화 속의 흑백 긴장감을 그저 뻔한 것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여하튼 바로

그 시기를 초등학생 또는 중고등학생으로 자라온 이들이 지금의 미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30, 40대가 된 것이고, 그 때문에 다소 세련되지

못한 점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멤버 타이탄>이 미국인들로부터 반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실화를 바탕으로 둔 영화들만의 묘미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철민 | 인터넷 칼럼니스트

▶ <리멤버 타이탄> 공식 홈페이지 http://disney.go.com/disneypictures/rememberthetit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