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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장 시장을 향하여,<이카루가>
2002-12-05

컴퓨터 게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슈팅 게임은 날로 어려워만 간다. 나 <트윈코브라>의 시대, 슈팅 게임은 게임을 잘 안 하는 사람이 어쩌다 오락실에 들러도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의 총알이 하나의 막을 이루면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이른바 ‘탄막’ 시대다.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면 원 코인 클리어는 불가능하게 된 지 오래고, 슈팅 게임은 점점 하드 코어 게임이 되고 있다.

<이카루가> 역시 하드 코어 슈팅 게임이다. 화면을 온통 뒤덮으며 정신 못 차리게 총알이 쏟아지는 건 물론이고, 속성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어 더 골치가 아프다. 적 기체는 하얀색과 검은색의 두 종류가 있고, 게이머 기체도 마찬가지다. 상대에게 더 큰 타격을 주려면 다른 속성의 총탄을 맞춰야 한다. 총알 피하기도 바쁜데 적 색깔에 따라 속성을 바꿔가면서 공격하려니 보통 정신없는 게 아니다. 적 공격도 무조건 피하기만 할 게 아니다. 같은 속성을 가진 총탄을 맞으면 에너지가 축적된다. 그리고 축적된 에너지를 방출해서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다. 특히 보스급 유닛은 이렇게 에너지의 축적/방출을 통해서만 해치울 수 있다. 그러니까 탄막 속에서 적 색깔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반대 속성으로 공격하면서 속성이 같은 적 유닛의 공격은 일부러 맞아야 한다는 기막힌 얘기다. 당연한 말이지만 적 속성은 무작위이지 어떤 규칙을 가지고 번갈아 나오는 게 아니다. 화면에 검은색과 흰색 적이 뒤엉켜 있는 상황에서 속성에 맞춰 적을 쏘아 떨어뜨리려니 너무 힘들다. 적의 총알을 골라서 맞는 일은 더 버겁다.

오락실용으로 출시된 <이카루가>가 게임기로 컨버팅된 건 놀랍게도 세가의 ‘드림캐스트’를 통해서다. 제작사인 세가가 중단을 선언한 게 2001년 1월 말이고 일본 내 ‘드림캐스트2’출하를 중지한 게 2001년 12월 초다. 그뒤 9개월이나 지난 2002년 9월에 드림캐스트판이 나왔으니 마케팅 전문가가 아닌 사람한테도 이상해 보인다. 단호하게 드림캐스트를 내팽개친 세가에 의리를 지키는 건 아닐 테고 마니악한 게임을 만드는 회사의 고집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작사인 ‘트레저’의 대표가 전혀 딴소리를 한다. 자기들 게임은 어떤 게임기로 내든 살 사람만 사는 게임이다. 잘 나가는 ‘플레이스테이션2’로 만드나 비운의 하드웨어 ‘드림캐스트’로 내나 팔리는 양은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만일 <이카루가>가 20만, 30만장 팔 수 있는 게임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미 끝난 게임기로 신작을 내면 오히려 홍보면에서 유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중에 플레이스테이션2용으로 출시하더라도, 드림캐스트로 기존 팬들에게 인기를 끈 뒤 내는 게 뭘로 보나 낫다. 그러니까 트레저는 사명감이 아닌 마케팅 전략으로 ‘드림캐스트’용 <이카루가>를 만든 것이다.

게임을 만들면 많이 파는 게 최대의 목표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판매량은 뒷전이고 자기가 좋아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돈을 좇는다고 무조건 형편없는 게임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이윤만 추구하는 회사를 보면 오만정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이상만 좇느라 회사 운영에는 아무 신경쓰지 않는 것도 옳지 않을 것이다. ‘트레저’의 전략은 단순한 틈새시장 공략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중성에 신경쓰지 않고 원하는 방향으로 게임을 만들면서도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면, 다양한 취향의 게임들이 공존할 수 있고, 게임 세계는 풍요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수용할 소비자층이 존재할지, 3만장에 만족하고 더이상은 바라지 않는 공급자가 있을지, 어느 쪽이건 쉬운 건 아니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