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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지아장커를 만나다 <1>
2002-12-07

˝5세대의 배신을 넘어, 지하전영은 전진한다˝

˝5세대의 배신을 넘어, 지하전영은 전진한다˝˝정성일, 지아장커에게 중국 영화의 현재를 묻다

같은 이야기를 두번 하는 것은 지루한 일이지만,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왜냐하면 영화는 두 번째 볼 때 발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올해 5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온 지아장커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를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올해 내가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영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그때의 나의 흥분은 <씨네21> 355호 77쪽에 실려 있다). 이 영화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스파이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 엘리아 슐레이만의 <신의 간섭>, 마뇰 드 올리베이라의 <불확실성의 원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아팟차퉁 위라세타쿤의 <친애하는 당신>과 함께 올해의 영화라고 부를 만하다. 칸은 그동안 소문이 나돌았던 첸카이거의 <북경 바이올린>, 장이모의 <영웅>, 티엔주앙주앙의 <작은 마을의 봄>, 장초치의 <아름다운 시절>을 모두 거절하고 지아장커의 <임소요> 단 한편을 올해 경쟁부문에 초대하였다. 그건 일종의 선언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중국영화의 세대교체를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칸에 첫 번째 초대받은 포스트 천안문세대(後天安門世代)의 영화이다.

중국 지하전영은 89년 천안문 이후 중국 한복판에서 정부와 숨바꼭질을 벌이며 그들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정부는 계속 탄압했고, 그들은 바깥의 도움을 얻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다. 장위안의 <북경녀석들>, 허이의 <우체부>, 왕샤오솨이의 <나날들>, 닝잉의 <경찰이야기>, 장밍의 <무산의 비구름>, 루유에의 <자오선생>은 90년대 세계영화 속에서 가장 격렬하게 그들의 정부에 저항하며 네오 리얼리즘 정신으로 죽의 장막 저편에서 중국 인민들의 삶을 담기 위해 그 밑바닥에서 전투를 벌여온 영화들의 이름이다. 그 안에서 지아장커는 새로운 희망의 이름으로 나타났다. 나는 95년 그의 첫 번째 영화 <소무>를 보면서 이 영화가 허우샤오시엔의 <펑꾸이에서 온 소년들>이나 왕가위의 <열혈남아>, 또는 차이밍량의 <청소년 나타>만큼 중요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아장커는 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위대한 시네아스트가 되어갔다. 그의 두 번째 영화 <플랫폼>은 허우샤오시엔의 <비정성시>, 혹은 첸카이거의 <패왕별희>와 겨루려는 야심을 가진 3시간27분의 대하서사극이다. 1979년에 시작해서 중국 한복판에서 10년을 통과하는 유랑 밴드의 우여곡절을 통해 이 영화는 문화혁명 ‘이후’ 자본주의와 만나는 중국을 정면으로 다룬 첫 번째 영화일 것이다. 그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는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한때 중국의 가장 중요한 탄광지대였지만, 이제는 자원이 고갈하여 완전히 폐광촌이 되어버린 산업도시 따퉁에서 살아가야 하는 열아홉살 소년 빈빈과 샤오진의 표류하는 삶을 뒤따른다.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지아장커는 그들의 거의 부서질 듯한 생활 안에서,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세상에 대해서 점점 무관심해지는 태도 앞에서, 그래서 결국에는 몸에 가짜 폭탄을 두르고 은행강도가 되어버리는 열아홉살의 애처로운 결심 속에서 불현듯 천년 전 장자의 성어 ‘任逍遙’를 본다. 그것은 사회주의 중국을 바라보는 깨달음일 것이다. 물론 우리도 올해 한국영화에서 장자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영화와 만났다. 한 사람은 사이버 게임에서 장자의 호접몽을 보았고, 다른 한 사람은 따퉁의 황량한 산업도시에서 살기 위해 몸까지 팔아야 하는 소녀의 팔목에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담은 나비 문신에서 장자를 본다. 이것이 아시아에서 함께 영화를 사유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지아장커와 그의 동료들의 전투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정부의 감시를 받고 있으며, 그들의 영화는 결코 인민들에게 보여질 수 없다. 촬영은 비밀리에 이루어지며, 그래서 <임소요>는 19일 만에(!) 촬영이 끝났다. 필름은 국경선을 넘어야 하며, 때로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소개하기 위해 서방세계 영화제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기도 한다. 이 인터뷰는 바로 그 상황에 놓여 있는 지아장커의 세 번째 영화 <임소요>와 그의 지하전영 세대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화어권 영화들에 대한 생각을 듣는 자리이며, 그들이 죽의 장막 저편에서 ‘하여튼’ 살아남아야 하는 비참한 전략에 관한 육성에 귀기울이는 대목이다. 한 가지 매우 유감스러운 일. 이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이루어지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임소요>의 개봉이 미루어지면서 그의 영화에 관한 흥미진진하고도 구체적인 이야기들은 다음 지면으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당신들이 만일 진심으로 궁금하다면 <임소요>가 빨리 보고 싶다고 친구들을 선동하고, 영화사에 항의메일을 보내시고, <씨네21> 독자란에 개봉독촉을 하는 독자편지를 스팸 수준으로 보내시라!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고, 수요는 공급을 창출하는 법이다. 나는 빨리 <임소요>를 여러분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만나고 싶다. 그때 이 인터뷰의 나머지 부분들도 여러분들과 만날 것이다. 정성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