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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계의 스타감독 차은택의 모든 것 <3>
2002-12-07

젊은 피,감성은 언제나 목마르다

차은택이 꼽은 `나의 뮤비 베스트7`,그리고 뒷이야기

<당부> 이승환 ┃ 1999년

혼례를 앞둔 소녀와 그 소녀를 연모하는 소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 “시놉시스를 쓰곤 광고로 치면 ‘유레카!’란 느낌이었는데, 여기저기 보여주니까 반응이 시큰둥했다. 목욕하는 여인, 풀을 뜯고 있는 소년, 어디에 연꽃이 하나 올려져 있다, 뭐 그런 이미지들이 글로는 다 한두줄이니까. 사흘을 꼬박 새우면서 촬영 막판, 새벽이 됐을 때는 제발 끝나게 해달라고 빌 만큼 힘들게 찍었다. 어떻게 찍으면 어떤 그림이 나온다는 것도 모르던 때, 잘 나왔다면 우연이다.”

<그대는 모릅니다> 이승환 ┃ 1999년

진심을 몰라주는 연인처럼 무심한 표정을 한 쇼윈도 안의 마네킹을 바라보는 그녀. 부랑자처럼 피폐한 심신으로 배회하다가 결국 그 마네킹을 끌고 텅 빈 놀이공원의 불빛 아래 둘만의 파티를 벌인다.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이미지가 현실과 교차되면서, 환상 속에서 사랑을 이루는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몽환적인 분위기가 매력적인 작품. “<악어>란 영화에 정말 푹 빠졌었는데, 물 속의 이미지는 거기서 나온 셈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놉시스다. 예전에 시나리오로 썼던 건데, 영화로 만들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많이 써먹었다. 주영훈의 <소망>, 윤상의 <마지막 거짓말>까지 세번씩이나.”

<그대가 그대를> 이승환 ┃ 2000년

일본 경찰에 쫓기던 독립투사와 그를 숨겨주는 일본 여인. 결국 둘 다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당하던 끝에 그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굴복하지만, 그녀의 배신이 극적인 반전을 이룬다. “‘그대가 그대를’, 뭐 어떻게 했을까. 사랑했다고 하면 사랑하는 감정 하나만 나오는데, 배신했다고 하면 증오도 있고, 많은 말들이 뒤에 숨겨져 있는 것 같지 않나. 지금까지 만든 뮤직비디오 중에서 반전과 복선 등 시나리오로는 제일 잘된 구조였고, 찍으면서는 좀더 편안하게 드러냈다. 일본 여인인 김정화가 쫓기는 남자를 문 사이로 내다보다가 문을 잡은 손가락을 느리게 끌면서 집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지금도 제일 맘에 드는 컷이다. 말로 들어오세요, 하고 대사로 설명하는 것보다 들어와라, 하는 여운을 주는 것 같고,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고, 유혹의 느낌도 드는 것 같아서.”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신승훈 ┃ 2000년

어린 시절 물에 빠졌을 때 만난 전설의 존재 인어와 재회하는 소년의 이야기. “인어는 늘 동화적으로 그려지는데, 사실적으로 찍고 싶었다. 배 위에 소년이 있고, 물 속에서 시커먼 실루엣으로 인어가 배쪽으로 다가오는 장면처럼, 스토리나 감정선보다는 인어의 리얼함을 살리는 데 더 꽂혀 있었다. 이 뮤직비디오를 찍은 사이판은 정말 인어가 살 것 같은 섬이다. 합성이나 특수효과 없이 카메라로 물 속에서 인어와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느낌을 실제로 잡았다. 나중에는 해가 지기 시작하고 시간이 없어서 잠수복을 벗은 채 그냥 숨을 참고 물에 들어가서 찍고 나오고.”

<난 남자다> 김장훈 ┃ 2001년

거리에서 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서로 대치한 김장훈과 차승원. 조직폭력배의 보스인 차승원이 먼저 그녀의 마음을 얻는 듯하지만, 새로운 적 앞에 도망치기 바쁜 그보다 얻어터지면서도 그녀를 지키려는 김장훈의 순정이 선택되는 것은 당연지사. “드라마타이즈가 아니라면, 이렇게 엉뚱한 생각으로 찍어보는 게 재밌다. 생각나는 대로 막 찍는 것, 느닷없는 걸 해보고 싶었다. 시놉시스도 노래 듣고 거의 글 나가는 대로 5분 만에 썼다. 결투장면인데 김장훈이 손가락을 딱 치면 갑자기 악단이 나오고, 의자도 갖다주고, 난데없이 부채춤이 나오고. 편집 튀고, 감정 튀고, 그래도 그냥 가는 게, 저땐 저런 발랄함이 있었구나 싶다. 지금이라면 좀더 서술적으로 풀었겠지.”

<나 가거든> 조수미 ┃ 2002년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을 극적으로 다루면서, 어린 시절부터 명성황후를 연모했던 홍 장군과의 미묘한 로맨스를 바탕에 깔았다.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 느낌이랄까. 찍은 것 중에서 완성도는 제일 높은 것 같다. 뮤직비디오 기능보다는 드라마 기능이 너무 세지긴 했지만. 찍기 전에 <명성황후>에 관련된 책을 세 가지 정도 읽었고, 작업하는 동안은 이상한 사명감 같은 게 있었다. 이미연씨를 닮은 인형을 태울 때 머리카락과 피부가 타들어가면서 눈만 남는 섬뜩한 장면이 있었는데, 결국 몇초 잘렸다.”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신승훈 ┃ 2002년

70년대를 무대로 한 사춘기 소년, 소녀의 만남과 이별을 아기자기한 클레이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뮤직비디오. 죽어가는 소년에게 희망을 주고자 앙상한 나무에 새 잎을 달던 소녀가 죽는다는 모티브는 <마지막 잎새>와 닮아 있다. “인형들의 리얼하지 않은 표정, 거친 움직임과 대조적으로 신승훈의 목소리는 너무 잘 만들어진 매끈한 목소리다. 그 두 가지를 붙이면 어떨까. 신승훈씨는 괜찮겠냐, 애니메이션이라 감정이 잘 안 살지 않겠냐고 걱정도 했다. 하지만 거칠고 무감각해 보이는 표정, 감정이 절제되면서 음악이 올라타기 좋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