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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마코토의 <왓츠 마이클>
2002-12-12

초강력 고양이의 귀환

그 녀석이다. 동그란 얼굴에 귀여움 가득한 눈, 속이려고 해도 틀림없다. 때로는 형사로, 때로는 스포츠 플레이어로, 나름대로 멋진 모습을 보이려고 하지만 언제나 고양이의 본성을 숨기지 못해 망가지던 바로 그 녀석. 무시무시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고양이 <왓츠 마이클>(What’s Michael, 학산문화사 펴냄)이 돌아온 것이다. 아니 처음으로 제대로 왔다고 해야 할까 그때는 제대로가 아니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공원에서 새를 잡으려다가 실패하곤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며 달아나던 고양이 마이클. 한때 국내 만화잡지에 번역연재되어 놀라운 반응을 일으켰던 바로 그 모습. 늦었다. 그래도 좋다. 뒤늦게라도 정식 단행본으로 제대로 만나는 즐거움은 크다.

격투코미디의 제왕 고바야시 마코토가 1984년부터 연재해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왓츠 마이클>은 지금 보아도 신선한 감성이 넘치는 동물만화의 고전이다. 만화 속에서 동물 주인공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아기공룡 둘리> <보노보노>처럼 완전히 의인화된 동물 주인공을 내세우거나, <동물의사 닥터 스쿠르> <80번지네 개>처럼 현실적인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그리는 두 갈래의 길로 분명히 갈린다. 그런데 <왓츠 마이클>은 다르다. 그 중간 어디에 있는 애매모호한 관계 속에서 동물과 인간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결코 통하지 않는 대화라서 더 즐겁다.

‘인간은 고양이를 따라오려면 멀었다’

마이클, 폿포, 차루 등 <왓츠 마이클>에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특정한 상황에 얽매어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단편 에피소드마다 전혀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고, 때로는 반쯤 의인화된 행동을 보이기도 하고, 또 때로는 완전히 의인화된 존재로 인간들을 지배하려고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그처럼 폭넓은 스펙트럼의 상황에서 고양이의 본질적인 특성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언제나 그 특성의 표현이 만화의 핵심이 된다. 고바야시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기묘한 개성의 캐릭터들과 그들의 표정묘사인데, 고양이를 그리고 있는 그 솜씨는 정말로 고양이를 가까이 두고 꾸준히 그려온 사람들도 혀를 내두르는 경지에 올라 있다. 추우면 인간의 무릎을 찾아 동그랗게 말려 잠드는 모습, 신기한 것을 보면 조심스레 숨어서 엉덩이를 움찔거리는 동작, 난처한 일을 겪으면 입을 살짝 벌리며 얼굴에 떠올리는 미묘한 표정…. 정말로 살아 있는 고양이를 보는 듯하다. 어떤 사진에서도 볼 수 없던 것들이다.

나는 이 만화가 근본적으로는 이문화 체험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고바야시의 정교한 눈에 포착된 인간과 고양이의 습성은 서로 충돌하며 기묘한 웃음의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특히 의인화되어 인간의 상황에 들어왔지만 고양이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마이클과 친구들의 모습에서 그것이 잘 드러난다. 프로 레슬러가 된 고양이, 결정적인 순간 로프 위에 올라가 엘보 드롭을 찍으러 뛰어내리지만 본능에 따라 가볍게 착지하고 만다. 개와 야구를 하게 된 고양이, 개들은 제법 열심이지만 고양이는 부드러운 베이스 위에서 잠들어버리고 공을 잡아도 혼자서 굴리고 멀리 가버린다. 도무지 인간의 덕목인 성실함이나 규율과는 거리가 먼 존재인 것이다. 반대로 고양이 인간들이 살고 있는 별의 모습도 등장한다. 겉모습은 인간이지만 고양이처럼 공원 벤치 밑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 남녀들, 튀어나온 걸 보면 본능적으로 냄새를 맡고 비비는 고양이의 습성을 이용해 손가락 모양으로 만들어진 간판들….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의문이 든다. 이상하다. 인간화된 고양이는 귀여운데 고양이화된 인간은 왜 저렇게 징그러울까 물론 몇몇 만화에서 고양이형 인간의 귀여움을 만날 수 있지만, 고바야시는 약간 추형의 반사실적인 인간 캐릭터를 동원해 그들을 더욱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든다. 아마도 이 만화의 근본적인 철학은 ‘인간이 고양이를 따라오려면 천년은 멀었다’인 것 같다.

완벽한 상황설정과 풍부한 묘사

결국 그 철학의 반영인지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푼수 애호가들이 이 작품의 여러 에피소드를 차지한다. 특히 겉보기에는 전혀 고양이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고양이 애호담들이 재미있다. 한 조직의 보스는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 고양이 잠옷을 입고 자지만, 라이벌 조직에서 그 비밀을 알아내면 비웃을 것을 두려워해 항상 노심초사한다. 한 도망자는 누군가의 집에 숨어들어 그 주인이 고양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자 고양이 애호법을 강의하고, 버터로 고양이 혀 잡는 법까지 가르쳐주고 달아난다.

드라큘라, 외계행성, 만화가 자신의 이름을 딴 놀이동산 등 갖가지 소재로 넘나들면서도 한 템포도 쉬어가지 않는 신선한 아이디어들이 기막힌 고양이 묘사와 어울려 이 작품을 몇번씩 읽어보게 만든다. 흔히들 개그와 유머는 아이디어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다시 보게 되면 김이 빠져버린다고 하지만, 훌륭한 표정묘사와 완벽한 상황설정은 보면 볼수록 감칠맛을 자아내게 된다. 지금도 나는 지붕 위에서 솔로 댄스를 추는 마이클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이명석/ 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 중 www.suga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