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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못하는 사람
2002-12-18

성석제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조 사장은 서울 을지로에서 자그마한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아예 말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더듬는다면 분명히 장애일 것이다. 사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백이면 백, 그와는 말이 안 통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그 어려웠던 ‘쌍팔년’(1955년) 군대에 무사히 다녀왔고 3남2녀의 자식들을 잘 키워 성가시켰다. 사업을 하고 있으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면 애초에 망했을 것이다. 요컨대 그가 말을 더듬는 것이 그의 인생에 일정한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전화가 일반화하면서 말더듬이라는 그의 특성이 자주, 눈에 띄게 드러나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일 때문에 밖에 나간 그가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마침 전화를 받은 사람은 들어온 지 며칠 안 되는 신입 여직원이었다.

“네. 창녕인쇄입니다.” “…”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창녕인쇄입니다.” “…”“여보세요. 왜 전화를 해놓고 말을 안 하세요. 말씀하시라니까요.” “…”

이때쯤이면 다른 직원들이 눈치를 채고 수화기를 빼앗아들게 마련이었는데 그날은 다른 직원들이 무슨 일로, 이를테면 요즘처럼 대선 홍보물을 찍느라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결국 여직원은 숨소리만 들려오는 수화기에 대고 “얌마, 너 중학생이지 엄마 찌찌 좀더 먹고 와, 짜샤. 별꼴이 반쪽이야” 하고는 소리도 훌륭하게 철커덕,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여직원이 들었던 그 숨소리는, 고장난 펌프를 계속 자아내는 듯한 소리로 표현을 해보자면 “바바박파프어파우파아파하” 같았다고 하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이른바 ‘음란전화’로 분류될 수도 있었다. 그로부터 10분쯤 뒤에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를 한 듯 여직원이 여보세요, 하자 ‘여보’라는 말까지는 들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에서 막혔다. “여보, 여보” 한 뒤에 끽끽거리더니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 새는 듯한 소리가 한동안 여직원의 고막을 울렸다. 표현해 보자면 “세스스세스시시”쯤이다. 물론 여직원은 수도 고장 신고가 잘못 들어온 걸로 간주하고 다시 전화를 제꺼덕 끊었다. 이윽고 한 시간쯤 지나 조 사장이 헐레벌떡 회사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누누니노누나노로롤르이” 하고 외쳤는데 그 말뜻은 대충 ‘누구야 누가 아까 전화를 그 따위로 받았어 왜 상대방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딱딱 끊고 그래! 박 과장 어디 갔어’ 이런 것이었겠지만 첫 대목 “누”에서 막히고 만 것이었다. 그 신입 여직원이 조 사장의 말뜻을 완전히 해득하게 되는 데는 주위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도 불구하고 여섯 달이 걸렸다는 전설이 있다. 그뒤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 여직원 역시 조사장의 편이, 팬이 되었다. 말씀 한마디한마디가 언제나, 너무나, 인간적으로 심금을 울린다는 이유로. 말을 더듬는 게 오히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주의깊게 듣게 만들었다. 스스로 힘들게 말함으로 과장과 거짓이 없어 버릴 말이 없었고 허튼 말이 없으니 신뢰를 주었다. 조 사장은 말을 잘 못함으로써 누구보다도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남는 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바야흐로 온 나라에 말의 전장 아닌 곳이 없다. 패악, 폭로, 비방, 공약, 토론, 연설, 성명, 논평 모두 말이다. 고금의 ‘말씀 고수’들은 말한다. 말이 많으면 자주 궁색해진다고. 기왕 말을 할 것이라면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애매모호하게, 사람들이 각자 바라는 대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을 남겨야 영향력이 강해진다고. 상대를 깎아내리고 상처 입히는 자기 주장으로는 일시적으로 이긴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결국 스스로의 속셈만 드러낼 뿐, 지고 만다고.

나는 어느 정당의 말 대표인 대변인의 현란하고 패도적인 입놀림을 보면서 그가 며칠 뒤에 어떤 처지가 될지 생각해보고 있다. 말 많던 이들이 궁색하게 될 결정적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