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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줌마의 이상한 분투,<딥 엔드>
2002-12-18

The Deep End, 2001년감독 스콧 맥게히, 데이비드 시겔출연 틸다 스윈튼, 고란 비스닉, 조너선 터커피터 도넷, 조시 루카스장르 스릴러 (폭스)

마가렛 홀(틸다 스윈튼)의 절대적인 임무는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5만달러를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으면서도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시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이 우선이다. 어떤 폭력과 위협도 가정이 우선이라는 그녀의 철칙을 흔들지 못한다. 조금만 어긋나면 코믹한 상황으로 빠질 것 같은 이야기지만, 막스 오퓔스의 1949년작 <레클리스 모멘트>를 리메이크한 <딥 엔드>는 결코 긴장을 놓치지 않고 마가렛 홀의 이상한 분투를 다정하게 바라본다.

해군인 남편이 집을 비우는 날이 많기 때문에, 마가렛 홀은 고령의 시아버지와 세 아이를 돌보느라 늘 분주하다. 어느 날 대학 진학을 앞둔 아들 보우가 리노의 게이 클럽 ‘딥 엔드’에서 일하는 30대 남자 다비와 술을 마시고 자동차사고를 낸다. 마가렛은 두번 다시 아들을 만나지 말라고 설득하고 다비에게 5천달러를 주기로 약속한다. 그날 밤 다비는 보우를 찾아오고 두 사람은 심하게 다툰다. 아침산책을 나갔다가 죽어 있는 다비를 발견한 마가렛은 시체를 호수에 유기한다. 얼마 뒤 다비의 시신이 발견되고 알렉(고란 비스닉)이라는 남자가 찾아온다. 알렉은 보우와 다비의 정사장면이 담긴 테이프를 보여주며 5만달러를 요구한다.

그런데 묘하다. 알렉이 전혀 성적인 매력을 갖지 못한 마가렛에게 끌리는 것은, 그녀의 ‘가정적’인 태도 때문이다. 마가렛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단호하게 알렉을 질책한다. 성별을 자유롭게 바꾸는 <올랜도>의 주인공을 연기했던 틸다 스윈튼의 중성적인 매력은 마가렛 역에 딱 들어맞는다. 알렉은 여성적인 매력이 아니라, 그가 결코 맛보지 못했을 절대적인 ‘가정’에 이끌린다. 그 이상한 이끌림에서 비롯된 불협화음의 음악을 <딥 엔드>는 그윽하고 서정적인 느낌으로 들려준다.

<딥 엔드>는 기묘한 스릴러다. 스릴러에는 선과 악 또는 범인과 피해자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긴장이 있어야 하지만 <딥 엔드>에는 그런 긴장이 없다. 마가렛은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협박에 응하지만, 여전히 ‘가정적’이다. 게다가 다비를 죽인 범인 따위는 애초에 없다. 다비는 자신의 실수로 죽었다. 마가렛은 보우가, 보우는 엄마가 죽였다고 생각한다, 의심한다.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마가렛은 알렉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보우에게도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모든 일이 해결되어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라고 말하는 마가렛에게 아들은 대답한다. 아무 것도 몰라도 돼요, 라고. 그게 바로 가정이다.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