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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시리즈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2>
2002-12-21

정통 첩보물과 오락물 사이의 줄타기

드라큘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가 악당 스카라망가로 출연한 <007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1974)까지 흥행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자 제작자인 브로콜리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1977)에 운명을 건다. 잠수함으로 변하기도 하는 본드 카와 연속으로 007 시리즈에 출연한 기록을 세운 악당 죠스 역의 리처드 키엘 등 오락적인 요소에 충실했던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는 007 시리즈의 부활을 알렸고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도 정착된다.

로저 무어는 <007 문레이커>(1979), <007 유어 아이즈 온리>(1981) 등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1983년에 <007 옥토퍼시>가 숀 코너리 주연의 과 함께 개봉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흥행에서는 가 앞섰지만 솔직히 영화는 엉망진창이었다. 다음 작품인 <007 뷰 투 어 킬>(1985)도 졸작이었고, 마침내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도 막을 내린다.

007 시리즈는 주어진 틀 내에서 쉴새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초기의 정통 첩보물에 점점 오락적 요소를 더하다가도, 한두 작품이 실패하면 다시 원작을 바탕으로 한 정통 노선으로 돌아간다. 그게 실패하면 다시 오락물이다. 007 시리즈의 전통적인 악당은 냉전시대의 적인 소련과 사회주의권 국가가 아니라 스펙터 등 제3의 조직이니 가상국가가 많았다. 숀 코너리의 007은 스펙터 등 가상의 조직이 등장하면서도 현실의 첩보전을 연상시킬 만큼 리얼한 측면이 있었다. 007에 영향을 받은 나폴레옹 솔로 시리즈나 제임스 코번의 플린트 시리즈처럼 황당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로저 무어의 007 시리즈는 오히려 007의 모방작들을 베낀 듯했다. 로저 무어의 007은 현실과 거리가 너무 멀다. 비현실적인 인물과 설정 때문에 숀 코너리가 만들어낸 007 시리즈의 육체적인 매력은 날아가버렸다. 사실적이고, 때로는 비정하기까지 한 첩보물의 아우라가 휘발된 것이다. 대신 007 시리즈는 오락물로 전환했다. 더이상 007 시리즈는 첩보물이 아니었고, 그냥 007일 시리즈일 뿐이었다.

냉전은 끝났는데 007은 뭐하나?

4대 제임스 본드로 티모시 달튼을 내세운 <007 리빙 데이라이트>는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다. 007 살인면허>(1989)에서는 더 어두워진다. 제임스 본드는 살인면허를 반납하고 개인적인 복수에 뛰어든다. 로저 무어의 007 시리즈에서 단체로 등장하기도 했던 본드 걸이 에이즈 시대에 걸맞게 축소되어 제임스 본드는 되도록 한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티모시 달튼은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에 비견될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은 007 시리즈의 존폐위기까지 몰고 온다.

6년 만에 돌아온 <007 골든아이>(1995)는 획기적인 면모가 엿보였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레밍턴 스틸>의 뺀질뺀질한 이미지를 끌어오면서 90년대에 걸맞은 제임스 본드상을 보여주었다. M이 여성으로 바뀐 것도 인상적인 변화였다. 시대의 변화에 적극 동참한 피어스 브로스넌의 007은 <007 골든아이>에 이어 <예스 마담>의 양자경을 제임스 본드와 함께 싸우는 본드 걸로 출연시킨 <007 네버 다이>(1997)로 제 궤도를 찾았다. 007 시리즈는 세기를 뛰어넘는 프랜차이즈로 확실하게 부활한 것이다. 반면 <007 언리미티드>(1999)는 성공에 겨워 주춤한 듯한 영화다.

냉전 시대의 007 시리즈는 소련을 직접적인 악당으로 묘사하지 않으면서도, 냉전의 불안감과 싸늘함을 잘 그려냈다. 하지만 로저 무어 이후의 007은 단순한 오락영화일 뿐이다. 첩보원이 등장할 뿐인. 냉전의 해체는 오히려 007을 비현실의 영역으로 빨아들였고, 이제는 무리하게 007의 배경에 현실을 끌어들이려다가 좌충우돌하고 있다. 오락영화로서 <스파이 게임> 같은 영화도 등장한 지금, 007의 현실성은 시대착오적이다. 더이상 007과 <트리플X>의 차이는 없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이미 오래 전에. 다만 007 시리즈만이 아직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

본드카와 PP | BMW부터 애스턴 마틴까지

007에게 늘 새로운 자동차와 특수장비를 공급하는 Q의 작업실을 거치지 않고 영화가 본 궤도에 오르는 일은 없다. 특수장비를 장착한 차들이 박진감 넘치는 묘기 액션을 선보이는 007 시리즈는, 영화 속에서 특정 제품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거나 보여줌으로써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는 PP(Production Placement)의 대표적인 사례. 숀 코너리가 멋들어진 애스턴 마틴 DB5의 특수좌석을 이용해 위기에서 탈출하는 <골드핑거>는, 그해 4월에 소개된 포드 무스탕의 첫 메이저영화 출연 등 다양한 포드 자동차를 선보인다. 독일의 BMW사는 <골든아이>에 Z3 로드스터를 선보이자마자 3억달러의 예약 주문을 받은 바 있다. 영국 언론들은 가장 영국적이어야 할 007이 독일차의 광고모델이 된 것에 혹평을 퍼부었지만, BMW는 <네버 다이>에서도 본드카 750iAL, 브로스넌과 양자경을 싣고 질주하는 모터사이클 크루저 매킨 R1200C를 다시 선보일 만큼 PP의 위력을 실감한 듯. 본드의 휴대드은 물론 미디어 재벌 카버의 통신기기 일체를 제공한 스웨덴 통신회사 에릭슨사 역시 PP의 수혜자다. <어나더데이>에서도 브로스넌의 애스턴 마틴 V12 밴키시, 할리 베리의 새빨간 선더버드 등 갖가지 포드 자동차들을 선보일 예정. 그 밖에 본드의 시계를 제작해온 오메가, 스미로노프 보드카, 로레알 화장품 등 시리즈의 단골들까지, 고급스러우면서 모험이 넘치는 삶의 스타일은 모방심리를 부추기며 무수한 PP를 수반하지만, 도가 지나쳐 영화 전체가 대형 광고판 같다는 비난여론도 만만치 않다.

본드 걸 | 본드의 연인, 팜므파탈, 그리고 여전사

눈이 팽 도는 자동차 스턴트와 수없는 건물을 날리는 폭발만이 007 시리즈의 스펙터클은 아니다. 시리즈마다 바뀌는 아찔한 미모와 몸매의 본드 걸들 역시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매는 소리없는 스펙터클. 본드를 유혹하거나 유혹당하는 것 외에 하는 일이 별로 없는 탓에 남성중심적 시선의 산물이란 비난을 면치 못했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본드 걸도 조금씩 변화했다. 하니 라이더 역의 우르술라 안드레스는 바다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걸어나오는 등장으로 강한 첫 인상을 남긴 1대 본드 걸. <위기일발>의 우아한 소련 망명자 타티아나 역의 다니엘라 비앙키는 황금빛 머리칼의 휘황한 미모로 2대를 장식했다. <골드핑거>의 관능적인 서커스단 리더 푸시 갤로어 역의 호너 블랙맨, <썬더볼>에서 악당 라르고의 농염한 정부 도미노로 그의 배신에 복수를 다짐하는 ‘미스 프랑스’ 출신의 클로딘 오제도 기억될 만한 본드 걸. 아무래도 최고의 본드 걸로 거론되는 인물은 <여왕폐하 대작전>에서 Mrs. 본드가 되자마자 블로펠드 일당에 살해되는 트레이시다. TV시리즈 <어벤저>의 에마 필로 알려진 다이애너 릭이 연기했고, 지적인 미모와 비극적인 운명의 여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공적인 동료이자 사적인 원수 본드에 대한 애증으로 갈등하는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소련 요원 아냐 역의 바버라 바하도 꼽을 만한 캐릭터. 시원시원한 발차기와 무술실력을 지닌 양자경의 중국 특수요원 웨이 린은, 본드와 대등할 만큼 강한 여전사 본드 걸(그래서인지 로맨스는 거의 없지만)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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