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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시리즈는 어떻게 진화했는가 <1>
2002-12-21

정통 첩보물과 오락물 사이의 줄타기

극장에서 처음으로 본 007은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다. 중학교 단체관람 때, 극장을 가득 메운 남학생들은 007에 열광했다. 특히 본드 걸이 나올 때마다. 잘생긴 로저 무어가 많은 본드 걸을 거느리고, 휘황한 액션을 선보이는 활극을 혈기왕성한 10대의 남자애들이 마다할 리 없다. ‘본드, 제임스 본드’라는 대사로 시작하여, 악당을 물리치고 본드 걸과 한가로운 한때를 즐기는 광경으로 끝나는 007 시리즈는 영원한 남자들의 꿈이다. 만화책의 초인들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지니지 않은 보통 남자 제임스 본드는 남자는 물론 여성들도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영웅이다. 강하고, 섹시하고, 유머러스하고, 친절하고 등등. 제임스 본드의 유혹에 말려들어 위험에 처한 본드 걸들도 꽤 있는 것처럼 제임스 본드는 우아하면서도, 위험한 남자다.

살인면허 흥행면허

1962년 <007 살인번호>로 시작된 007 시리즈는 세계를 위기에서 구하는 첩보원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미국의 미사일을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닥터 노의 계획은 영국 MI6의 첩보원 제임스 본드(코드네임이 007이며, 00은 독자적 판단으로 살인이 가능하다는 의미)에 의해 분쇄된다. 테렌스 영이 감독한 <007 닥터 노>는 007 시리즈의 원형을 만들어냈다. 닥터 노는 냉전세력의 양축인 미국과 소련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비밀조직 스펙터의 일원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스파이의 모습을 그리는 데에서 <007 닥터 노>는 대단히 사실적이었다. 첨단무기와 수영복을 입은 본드 걸 우르술라 안드레스만 아니라면. 냉전 스릴러이면서도 교묘하게 현실에서 벗어나고, 그러면서도 사실성을 놓치지 않는 007 시리즈는 환상과 현실을 교묘하게 얽어놓은 매력적인 스파이영화였다. 남자들의 야성적인 욕망을 자극하고, 노골적으로 여성을 유혹하는.

007의 첫걸음은 <007 살인번호>였지만, 본격적인 행보는 <007 위기일발>(1963)에서 시작된다. 러시아 첩보원이 스펙터와 결탁하여 제임스 본드를 유인한다. 적인지 동지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본드 걸의 이미지는 <007 위기일발>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드 걸 중 최고의 미모로 손꼽히는 다니엘라 비앙키의 유혹적인 자태는 을 빛낸다. 숀 코너리와 암살자 그랜트 역의 로버트 쇼가 벌이는 격투장면도 007 시리즈 중에서 손꼽히는 명장면. 3번째 작품인 <007 골드핑거>(1964) 역시 대성공을 거두며 007 시리즈는 20세기 최고의 프랜차이즈로 성장한다. 골드핑거는 미국 연방정부의 금이 보관된 포트 녹스에 원자폭탄을 터뜨리려는 음모를 세운다. <007 골드핑거>에서는 영국산 애스턴 마틴에 다양한 장치를 부착시킨 본드 카와 함께 Q가 개발한 007의 비밀병기가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다.

<007 선더볼 작전>(1965)은 스펙터가 빼돌린 핵폭탄을 찾아내는 이야기이고, <007 두번 산다>(1967)는 미국과 소련의 로켓을 훔쳐 양국의 충돌을 유도하려는 스펙터의 음모를 분쇄하는 이야기다. <007 두번 산다>의 감독 루이스 길버트는 이후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와 <007 문레이커>도 만들었는데 약간 황당한 오락성을 강화하는 데 공헌한 감독이다. <007 두번 산다>는 제작비를 후원한 일본을 위해 일본이 주요 무대로 설정되어 스모나 전통 혼례식 등 일본을 선전하는 장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숀 코너리가 제작자와의 갈등으로 하차한 뒤, 2대 제임스 본드로 호주 출신의 조지 래젠비가 발탁된다. 피터 헌트가 감독한 <007 여왕폐하 대작전>(1969)은 007 시리즈 최고의 작품으로 흔히 꼽힌다. 액션장면도 뛰어나고, <007 선더볼 작전>과 <007 두번 산다>가 약간 공상적으로 흐른 데 대한 반발로 원작을 충실하게 각색하여 정통적인 스파이물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설원에서의 스키 추격전은 탁월한 명장면으로 꼽힌다. 하지만 문제는 조지 래젠비다. 숀 코너리가 만들어낸 섹시하고 위험한 남자의 향취를 전혀 이어받지 못했다. 자신의 개성도 없었고. 결국 <007 여왕폐하 대작전>은 흥행에 실패하고, 숀 코너리가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로 돌아온다. 숀 코너리가 뚱한 얼굴로 나오는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전작 <007 여왕폐하 대작전>에서 제임스 본드와 결혼했던 트레이시를 죽인 스펙터의 두목 블로펠드에 대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스무개의 작전, 5명의 본드

숀 코너리가 다시 물러나고 제임스 본드는 로저 무어에게 돌아간다. 로저 무어의 첫 작품은 <007 죽느냐 사느냐>(1973). 이안 플레밍이 반색한 로저 무어는 숀 코너리와는 다른 이미지의 제임스 본드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동물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던 숀 코너리에 비해 로저 무어는 부드럽고 신사적이었다. 로저 무어의 제임스 본드는 기품이 있고, 유머가 더욱 풍부한 플레이보이의 이미지다. <007 죽느냐 사느냐>는 최고의 졸작이라는 평도 들었지만, 유머와 액션이라는 오락적인 면만 따지면 달라진다. <007 죽느냐 사느냐>는 정통적인 첩보물의 면모를 버리고 약간은 공상적인 액션활극으로 바뀌는 007 시리즈의 변화를 암시한다.

원작자 이언 플레밍과 프로듀서 앨버트 R. 브로콜리 | 본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세계적인 스파이 제임스 본드의 아버지는 007 시리즈의 원작소설을 쓴 이언 플레밍. 런던의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 이튼과 샌드허스트 군사학교 등 엘리트 코스를 거친 그는 <로이터통신> <타임스>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1933년 모스크바의 영국인 스파이 재판 등 다양한 취재 경험, 2차대전 당시 영국 해군정보국의 지휘관으로 복무한 등등의 이력이 훗날 작품의 바탕이 됐음은 물론. 종전 뒤 ‘골든아이’라 이름한 자메이카의 별장에서 집필에 전념, 1952년 007의 탄생을 알린 <카지노 로얄>을 발표한다. 플레밍은 53년부터 66년까지 장편 12편, 단편모음집으로 <유어 아이즈 온리>와 ‘리빙 데이 라이트’가 포함된 <옥토퍼시>의 2편을 선보이면서, 향후 007 시리즈의 왕성한 생명력을 뒷받침했다. 1962년 첫 007 영화 <살인번호>가 제작될 당시 그가 추천한 본드는 로저 무어라고. 영화 007 시리즈의 대부는 1989년 <살인면허>까지 모두 16편을 제작한 프로듀서 앨버트 R. 브로콜리. ‘커비’란 애칭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뉴욕 출신으로, 하워드 혹스의 조감독, 유명배우의 매니저를 지내다 52년에 영국으로 갔다. 본드 시리즈에 흥미를 느낀 그는, 원작 판권을 보유한 해리 샐츠먼과 이온 프로덕션을 차려 영화제작에 나선다. 샐츠먼은 77년에 자신의 지분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에 팔았지만, 브로콜리는 제작을 계속하면서 82년 오스카의 어빙 탈버그상을 수상했다. 시리즈의 17번째인 <골든아이>부터는 의붓아들 마이클 G. 윌슨과 딸 바버라 브로콜리가 아버지의 지분을 넘겨받아 차세대 프로듀서로 활동 중.

악당들 | 무국적 혹은 다국적, 제3세계로

007의 존재이유라 할 만한 악당 중에서도, 최고의 적수는 스펙터의 우두머리 에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 3편에 걸쳐 고양이를 쓰다듬는 손 정도로 등장할 뿐이지만, <살인번호>의 강철손 과학자 닥터 노, <위기일발>의 위력적인 암살자 레드 그랜트와 신발에 비장의 독침을 숨긴 로사 클렙 대령, <썬더볼>의 ‘넘버 2’ 에밀리오 라르고가 모두 그의 수하다. 온갖 음모의 배후에 숨어 있던 그는 시리즈의 5번째인 <두번 산다>에서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다. <썬더볼>의 공동저자로 스펙터 조직 관련 아이디어에 대한 저작권에 승소한 케빈 매클로이와의 갈등 때문에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를 끝으로 사라지긴 하지만. 이름부터 금투성이인 영국 재벌 오릭 골드핑거와 한국계 심복 오드잡은 인상적인 금빛 시체와 핵폭발 음모의 배후. 007을 죽이고자 ‘황금총을 든 사나이’ 스카라망가, <나를 사랑한 스파이> <문레이커> 2편에 연속 출연 기록을 세운 죠스도 기억될 만한 악역들이다. 죠스의 강철이빨은 일단 착용하면 13초 이상 버티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워서 입을 벌리는 장면에서만 착용했다고. 그 밖에도 광기어린 억만장자, 남미의 마약왕, 미디어 재벌까지 다양한 적들이 나오지만 갈수록 악당들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게 사실이다.

제작비 vs 흥행 | 블록버스터의 미미한 시작

지금은 선뜻 믿기지 않겠지만, <살인번호>의 예산은 애초 100만달러 미만이었다. 더구나 거기서 10만달러쯤 초과되자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제작 중단을 고민했을 만큼, 007의 가능성은 미지수였다. 하지만 <살인번호>가 미국에서만 1600만달러, 세계적으로 약 6천만달러를 벌면서 007 영화의 제작비는 배로 뛰기 시작했다. <위기일발>은 200만달러, <골드핑거>는 400만달러, <두번 산다>는 당시로서 천문학적 수치였던 950만달러를 들였다. 이미 <골드핑거>부터는 세계 배급수익이 1억달러 미만인 경우가 <여왕폐하 대작전> <황금총을 든 사나이> 2편 정도라니 밑지는 장사는 없었다. 79년작 <문레이커>에서 <살인면허>까지 10년간 제작비는 3천만∼4천만달러, 세계 시장 수익은 1억5천만∼2억달러선. 피어스 브로스넌과 함께 6년 만에 시리즈를 이은 <골든아이>부터는 제작비가 6천만달러, 미국 내 수익만 1억달러 이상, 세계적인 수익이 3억5천만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어나더데이>로 이어지는 브로스넌의 007 시리즈는, 1억 이상을 들인 대규모 스펙터클로 수억을 회수하는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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