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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007 영화 <어나더 데이> 멜버른 시사기 <3>
2002-12-21

제임스 본드,`악의 축`으로 뛰어들다

“영화는 그저 판타지일 뿐”감독 리 타마호리 인터뷰

리 타마호리는 <007 어나더데이>가 순수한 액션영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한국인들의 분노를 전해 듣고 예정에 없던 인터뷰를 승낙한 타마호리는 가끔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영화를 설명하고 변호했다. 타마호리는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현실을 다룬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감독. <머홀랜드 폴스>를 연출하면서 할리우드 경력을 시작한 타마호리는 제작비 1억달러가 넘는 블록버스터 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확실하게 자리를 굳혔다. 타마호리는 “어떤 영화라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서” 이 영화를 택했다고 말했다.

▶ 007 시리즈는 악당의 국적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영화였다. 하지만 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인 DMZ에서 결정적인 사건들이 벌어지고, 북한의 정치적 상황을 강조하기도 한다. 당신은 왜 북한을 선택했는가.

북한은 냉전이 끝난 현재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폐쇄적인 국가다. 아마 미얀마 정도가 북한과 비슷하지 않을까 100만명의 젊은이들이 날마다 서로 총을 맞대고 있는 한국은 <007 어나더데이>를 찍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였다. 우리는 지뢰가 널려 있고 암시장에서 무기를 거래하는 나라가 필요했고, 북한은 실제로 그런 곳이다. 사람들이 흥미있어 할 거라고 생각해서 북한을 택했지만, 영화 속의 악당은 북한 전체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북한을 위험에 몰아넣는 인물이다. 미얀마를 택했건 중국을 택했건 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을 것이다.

▶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공간이나 소품이 정확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북한군 군복이 그 대표적인 예다. 영화를 찍기 전에 자료 조사를 했는가.

나는 의상을 준비하기 위해서 따로 리서치를 했고, 담당자는 내게 열다섯벌이나 되는 의상을 보여줬다. 아마 현실과 다른 부분이 딱 두 군데 있을 것이다. 하나는 수륙양용차인 호버크래프트를 운전하는 병사들의 군복이다. 호버크래프트는 존재하지 않는 무기다. 존재하지 않는 무기를 조종하는 군인들이 존재하는 군복을 입을 까닭이 있는가. 이것은 판타지다. 그들은 정규 군인이라기보다 문 대령이 조직한 일종의 사병에 가깝다. 또 다른 하나는 문 대령이 입은 군복인데, 미국적인 분위기를 섞었다. 특권층 자제인 문 대령은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인물이며 미국에서 교육받았다. 그런 사람은 분명 남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에서 그의 군복을 따로 디자인했다.

▶ 릭윤은 그 자신이 한국계다. 어떻게 그와 일하게 됐는지.

중국인 배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스페인 사람은 스페인 배우가, 중국 사람은 중국 배우가 연기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영어를 능숙하게 말할 줄 아는 한국인 배우를 찾다가 릭윤을 만나게 됐다. 그는 정말 잘생기지 않았는가. 너무 잘생겨서 그를 악당으로 설정한 다음 죽여버렸다. 얼굴도 하얗게 만들고 다이아몬드도 박아넣고. (웃음) 릭윤도 처음엔 이 시나리오를 납득하지 못했지만, 대화를 거쳐 합의에 도달했다. 사실 먼저 시나리오를 준 한국인 배우가 있었는데(차인표를 말한다), 그는 거절했다. 나중에 그가 섭외과정을 인터넷에 공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불쾌했다. 출연 여부는 그의 자유지만, 거절한 시나리오 내용을 발설한 것은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 007 시리즈는 영화마다 등장하는 공통점을 지켜야 한다. 그 한계는 어디까지였고, 당신은 얼마나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었는가.

007 시리즈는 자동차와 여자, 여러 가지 무기가 등장하는데, 이를 지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나는 그 관습을 좀더 과감하게 바꾸고 싶었다. 영화 첫 부분에서 제임스 본드는 고문당하고 수염과 머리를 기른다. 이것은 이전 007 시리즈가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슷한 부분은 있다. 마지막에 악당이 죽고 제임스 본드는 여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자동차 추격신도 꼭 들어가야 한다.

▶ 당신은 십대 같은 기분으로 <007 어나더데이>를 만들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가.

나는 십대일 때 <007 골드핑거>와 <007 썬더볼>을 봤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007 시리즈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 여자, 액션, 폭발이 그렇다. 영화를 찍으면서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 같은 면을 즐겼고, 피어스 브로스넌을 비롯한 배우들도 모두 그랬다. 힘든 촬영이었는데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 당신과 피어스 브로스넌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소문이 있다. 배우들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꾸려나갔는가.

우리는 모두 프로다. 프로답게 예의바르게 처신하면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린다. 피어스 브로스넌은 촬영 초반에 내가 어떤 식으로 영화를 만들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세편의 007 영화를 찍었고, 모두 감독이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곧 적응했고, 모든 일은 프로답게 풀려나갔다.

▶ 당신은 가 오락영화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DMZ가 불타는 모습을 보는 한국 관객은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007 어나더데이>는 어디까지나 판타지다. 북한이라는 실제 국가가 등장한다고 해서 일어날 법한 일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릭윤을 보라. 그는 얼굴에 다이아몬드를 박고 있는데 우습지 않은가.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당장 다이아몬드를 빼낼 텐데. (웃음) 악당의 얼굴을 레이저로 관통하는 장면처럼, 나는 모든 장면을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다. 007 시리즈는 순수한 오락이고 팝콘영화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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