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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의 배우 이자벨 위페르의 매력 탐구 [1]
2002-12-27

얼음의 외면, 불꽃의 내면

수많은 유리문을 지나 여자는 음악당을 나온다. 지갑 속에 그리고 마음속에 칼을 거머쥐고 들어간 여자였지만 막상 어린 제자를 보자 그 칼로 아이를 찌를 수는 없다. 대신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여자. 헤아릴 수 없이 겹겹이 포위된 음악당의 유리문을 밀치고 나오는 여자의 얼굴은 마네킹처럼 무표정하다. 유리문은 겹겹이 숨겨진 불꽃처럼 여자를 포위하고 그녀는 그 문을, 겹겹이 포장된 무의식의 터널을, 힘겹게 밀치고 나온다. 어디로 갈까. 여자는 말없이 가슴에서 피를 뚝뚝 흘린다.

2001년 칸영화제는 피아니스트의 히로인, 이자벨 위페르의 발 아래 여우주연상을 갖다바쳤다. 예외없는 결정이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예감한 수상이기도 했다. 이미 위페르는 1978년 <비올레트 노지에르>로 칸영화제 주연여우상을 수상했던 터. 이 수상으로 그녀는 칸영화제에서 주연상을 두번 수상한 유일한 배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음악당이 배경인데도 프랑스어로 연기하고, 슈만을 연주하는 장면에서도 맨 얼굴 하나만 있으면 용서가 되는 배우, 이자벨 위페르. 아마 동명의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연기했더라면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정열에 스크린이 다 타버렸을 것처럼 보이는 영화 피아니스트는, 전적으로 이 여자,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이다.

▣ 침묵으로 웅변하는 얼굴

왜 배우를 직업으로 택했느냐는 질문에 이자벨 위페르는 “연기를 하면 침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얼핏 모순된 것처럼 들리는 이 대답은 스크린 밖에서는 수수한 여자로 살아가지만 스크린 안에서는 침묵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어떤 여배우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를 대변해주는 소감이라 할 것이다. 절제된 연기로 인간의 차가운 위선과 타락 그 밑면에 침잠한 순진한 정열과 농염함을 함께 표현해주는 프랑스 여배우는 섬세한 동작과 절제된 감정표현으로 자신을 유럽 최고의 여배우 자리에 올려놓았다.

사실 위페르의 외모는 선배인 카트린 드뇌브나 동시대의 여배우들, 이자벨 아자니와 내털리 베이 혹은 한 세대 후배인 에마뉘엘 베아르 등에 비해 가장 평범한 편에 속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리 시내에서 그녀를 스쳐 지나가더라도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약간 하관이 빠른 그녀가 가느다란 입매를 꼭 다물었을 때 그녀는 얼음나라 여왕처럼 선병질적인 차가운 외관을 내보이지만 그러나 그 차가움은 그레타 가르보의 그것처럼 신비하거나 접근불가한 속성으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작게 연기하는 그녀의 연기 스타일은 메릴 스트립이나 카트린 드뇌브가 그러하듯 언제나 카메라에 다가가기보다 카메라가 자신쪽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종류의 고혹적인 매력을 지녔다. 그리하여 그녀의 조용함 속에 숨겨진 정열이 일거에 폭발할 때 관객은 문득 자신이 봐왔던 이 평범한 여자가 바로 그 여자일까 하는 의문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마치 오랫동안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할 때처럼 아득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관객은 전혀 다른 내면의 세계에 빠져드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녀의 평범한 외관은 거장의 감독들이 천의 얼굴을 그려넣고 싶어할 정도로 알맞게 비어 있고 알맞게 차갑다.

올해로 마흔일곱살인 위페르는 1955년 3월16일 파리에서 5자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헝가리 이민자의 후예인 그녀는 영어교사였던 어머니의 격려로 소녀 시절 연기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1968년에 베르사유 연극학교에 들어갔다 한다. 3년 뒤인 16살 때 그녀는 <포스틴과 아름다운 여름>(1971)이라는 영화로 데뷔했으며, 그때부터 꾸준히 활동하여 1970년대 중반까지 15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다. 그녀의 출세작은 1977년 클로드 고레타 감독의 <레이스 뜨는 여자>. 이 영화에서 그녀는 파리 명문가의 자제이며 법대생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배신으로 점차 황폐해져가는 미용사의 내면을 가감없이 연기해냈다. 당시만 해도 다소 수줍고 자폐적인 얼굴을 지녔던 처녀 위페르는 겉으로는 말이 없지만 단 한번의 달콤한 유혹에도 헌신을 다하는 순진한 처녀성으로 관객에게 재능있는 프랑스 여배우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그녀는 78년 <비올레트 노지에르>에서 청교도적인 도덕관을 강요한 부모를 살해한 소녀의 역할을 맡으면서 클로드 샤브롤 감독과 자신 모두에게 연기의 돌파구를 마련한다. 14살 소녀는 여러 남자와 관계를 맺지만 부모는 그녀의 삶에 무관심하다. 이 영화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위페르는 이때부터 그녀의 전매특허와 다름없는 억압된 여성과 그 밑에 도사린 내밀한 심리의 결을 묘사하는 데 장기를 보여준다. 사실 그녀의 조용한 자태 밑에 도사린 것은 바로 감추어진 성과 죽음의 에너지인데 이러한 내면의 화염은 외면의 평온함으로 인해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그녀가 상드린 보네르와 함께 클로드 샤브롤의 범죄영화에 가장 자주 출연하는 배우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커티슨 핸슨의 <베드룸 윈도우> 같은 장르영화보다 섬세한 내면묘사가 가능한 유럽 거장들의 작품에서 더욱더 빛을 발하는지 모르겠다. 베르트랑 블리에,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감독 외에도 모리스 피알라의 80년작 <룰루>에서 그녀는 날건달 제라르 드 파르디외의 상대역인 넬리 역으로 이전의 작품들에서 보여주었던 자폐적이고 차가운 소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파격을 시도했다. 감독 모리스 피알라는 아마추어 배우들 중심으로 캐스팅한 방식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스타급들과 공연한 셈이었고 이자벨 위페르는 이에 보답한 셈. 여기서 그녀는 삶에 아무런 목적을 갖고 있지 않지만 에로틱 에너지를 발산하는 젊은 건달 때문에 늙은 남편과 자신의 부르주아 친구들을 버리는 부잣집 가정주부 역할을 맡았다. 70년대 지스카르 데스탱 정부의 무력함과 사회적 변화에 대한 지극히 냉소적인 태도를 지닌 피알라의 태도에 모나리자의 미소를 가진 위페르의 미소가 더해지면서 <룰루>는 미묘한 성적 에너지로 가득 찬 드라마가 되었고, 그녀는 이후 성인 연기자로 80년대 들어 다작의 폭넓은 연기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 위페르, 차가운 혹은 지적인

80년대 위페르의 연기의 성가는 단지 프랑스에만 머무르지 않고 국제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쪽으로 발을 넓힌다.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저주받은 걸작 <천국의 문>에서 그녀는 두 남자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루는 창녀 역할을 맡았고 커티스 핸슨의 <베드룸 윈도우>에서 밀회 도중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한 유한 마담 역을 맡아 특유의 지적인 차가움이 섞인 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한편 그녀의 연기에 대한 야심은 미국 독립영화의 기수 할 하틀리에게 ‘팬레터’를 보내 <아마추어>(1994)에서는 수녀원을 나와 포르노 소설을 쓰는 이자벨 역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천국의 문>을 제외하고 한때 잔 모로가 그러했듯 그녀의 할리우드 진출은 사실 그녀의 우아한 전형성을 장르적 관성의 구심점으로 사용하는 데 그쳤을 뿐 더이상의 진전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후 남편이 된 로널드 챰마의 <밀란 느와르>(1987)나 언니인 샤롯 위페르가 감독한 <진실한 샤를롯>(1985) 등에 주연을 맡았으나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고 이 시기에 뭐니뭐니해도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에 빛을 던져준 사람은 누벨바그의 거장 클로드 샤브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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