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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미술감독 이종필
2003-01-08

프로덕션디자인은 `약속`이 생명

‘Tree of moon’이라는 주소를 가진 이종필(34) 감독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자마자 겨울 저녁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박힌 달과 나무가 오롯이 손짓을 한다. 그 모습은 자못 스산하기도 하고 선정적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27일 <H>의 개봉과 함께 새로이 단장한 이곳에는 그동안 이종필의 손을 거쳐간 <세븐틴> <파이란> <H>의 영상미술 제작배경과 각종 단편들의 이미지 스케치들이 고스란히 실렸다. “더 늦기 전에 가지고 있던 자료를 한번 파일링할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원래 개봉 전부터 자료를 올려달라는 재촉이 있었지만 이제야 공개합니다.” 미술감독과 아트디렉터의 개념조차 불분명하던 <세븐틴>이나 감독과 촬영감독, 미술감독의 의사소통이 삐거덕대던 <파이란>이 아닌, <H>를 ‘진짜 입봉작’으로 꼽는 이유도 여기에 적혀 있다.

“<H>는 Peter라는 촬영감독을 통해 프로덕션디자이너의 역할이 한층 힘을 얻어낸 작품”이라고 시작하는 작품후기에서 그는 “서로가 동반자적인 형태로 미술과 촬영을 함께 고민했으며....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연출을, 촬영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촬영을 미술감독은 또 자신이 원하는 미술을 서로간의 약속 안에서 행할 수 있었기에 <H> 미술은 그 네 사람의 의견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확언한다. 한편의 영상미술을 완성시켜 나가는 데 동등하고 적극적인 입장에서 감독 혹은 촬영감독과 절대적인 신뢰를 주고받았다는 충일감은 그에게 감동 이상의 것을 허락한 듯 보였다. “이제 비로소 프로덕션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게 된 기분이랄까요 영상미술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한 단계 풀린 느낌이에요.”

동국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그가 영화로 방향 선회를 한 것은 졸업을 한 직후였다. 전공에 대한 회의가 있었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어 망설이던 그에게, 같은 대학 연영과 출신 김수현이 영화판 입문을 권유했다. 흐릿하게나마 전공을 살리고 싶었던 그는, “아직 미술쪽은 체계가 잡히지 않았으니 먼저 조명부터 시작하라”는 김수현의 제안으로 다섯편의 조명부 생활을 마치고, 97년 <나쁜 영화>와 <죽이는 이야기>의 미술부 명찰을 단다. 99년 말에 시나리오를 받은 <H>는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1년 12월에야 촬영이 시작됐고, 1년이 꼬박 흘러서야 비로소 세상 빛을 보게 된 작품. 덕분에 프리 프로덕션만큼은 철저히 이뤄졌고, 감독, 촬영, 미술의 아귀맞는 대화로 미장센 속 색감, 공간, 인물, 사건의 배치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도시의 회색빛, 구원의 하늘빛이 인물 속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나 과잉된 피의 이미지를 절제하고, 스릴러의 묘한 압박감을 공간을 통해 표현해내는 이씨의 실력은 영화를 통해, 그리고 그의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것(http://treeofmoon.netian.com).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

프로필

→ 동국대 예술대학 서양화과 89학번→ 95년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천재선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조명→ 96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꽃잎> 조명→ 96년 <금강> <직녀에게> 무대미술→ 97년 <나쁜 영화> <죽이는 이야기> 아트디렉터 어시스트 및 소품→ 98년 <세븐틴> 미술감독→ 2001년 <파이란> 미술감독→ 2002년 <H> 미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