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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금 게임의 진화?<나무 하나가 빠져버린 날의 가로수길>
2003-01-09

컴퓨터게임

아케이드와 비디오 게임에서는 세계 최강인 일본이지만 PC 게임시장은 보잘것없다. PC 보급률이 낮다보니 덩달아 시장규모도 작아서 1만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규모보다 더 특이한 게 구조다. 제대로 된 PC 게임 제작사는 팔콤 정도고, 일본에서 출시되는 PC 게임의 절대 다수가 ‘18금 게임’, 이른바 ‘야게임’이다. 시장규모가 작은 데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게임이 쏟아져나온다. 지난해 12월 한달 동안 나온 성인용 게임만도 71개다.

아무리 많은 게임이 나오더라도 성인 게임 시장은 정체되어 있다. 소재가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게임성보다는 다른 걸 우선시하는 장르에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도, 장르간의 부침도, 게임 업계의 위기도 성인용 게임 시장은 비껴 간다. 그래픽의 해상도와 여주인공 스타일의 변화를 제외하면 10년 전 게임이나 요새 게임이나 크게 다를 게 없다. 99%의 게임이 대화를 선택하면 그림이 보여지는 시스템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3D 그래픽을 18금 장르에 도입하는 용감한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실험단계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비주얼이 중요한 장르에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흉측한 3D 캐릭터는 평판이 좋지 않다. 그렇지만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을 내세우는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애니메이션 부분을 3D 툰 렌더링으로 해서 2D의 장점인 귀여운 그림을 살리면서도 3D의 장점을 내세우는 게임들도 있다. 한명하고만 대화하는 게 아니라 여러 캐릭터들을 한 화면에 등장시켜서 선택하는 대화에 따라 특정 캐릭터가 앞으로 나오는 것으로 친밀도를 표현해주는 것도, 나름대로 시스템 혁신이라면 시스템 혁신이다.

<투 하트> <화이트 앨범> 등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성인용 게임의 대중화를 이끈 ‘리프’사의 혁신 이후, 소재도 다양해지고 있다. <나무 하나가 빠져버린 날의 가로수길>이라는 긴 이름의 게임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어버린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다. 사랑했던 아내가 아이만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버렸다.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은 아내를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는 것 같아 두렵다. 이 여자 저 여자와 어떻게든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 차 있는 성인용 게임의 일반적 주인공과는 좀 다르다. 단순히 베드신이 나오니까 성인용이 아니라 성인이어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성인용 게임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18금 게임의 진화 중 제일 두드러지는 건 DVG(DVD VIDEO GAME)의 등장이다. DVD 플레이어에 있는 장면 선택 기능을 이용해서 이야기의 분기를 진행한다. 이 정도 가지고는 인터랙티브성이 너무 약하다. ‘보통’ 게임이라면 게임성이 너무 떨어진다. 하지만 18금 게임은 게임성과 관계없이 선정적 장면을 보려고 플레이하는 것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용량 매체의 장점을 살려 애니메이션 비중을 높였다는 면에서 18금 게임의 본질에 더 가까이 간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새로 나오는 게임들뿐 아니라 <마녀 사냥의 밤에> 같은 고전 게임들까지 DVG로 부활하고 있다. DVG는 낮은 PC 보급률을 극복하기 위한 묘안 이상이다. DVG는 DVD 플레이어뿐 아니라 플레이스테이션2나 엑스박스로도 즐길 수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엑스박스로는 ‘야게임’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존 시장 확장에 틈새시장 공략까지 동시에 노리는 경영 혁신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박상우/ 게임평론가 www.MadOrDea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