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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오!컬트 <백치들>
2003-01-15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고통받는다

너무 뒤늦게 깨달은 사실이라서 억울할 따름이지만, 바보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삶이 아닐까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그 모든 짐들과 책임져야 할 모든 주변 관계들과 기억하고 실천하고 감당하고 뒤처리까지 하고 있는 그 모든 일상들이 당신이 애초부터 바보였더라면 시작도 없었을 일이었을 것을. 만약 정말 두뇌가 뛰어난 천재가 있었다면 그는 세살 즈음에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고는 어느 날 입을 헤 벌리고 열세살 되도록 글도 읽지 못하는 척하고 말을 더듬으며 바보짓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의 밥값을 하기 위해서 남들과 경쟁하는 일도, 허리가 휘어져라 뛰어다닐 일도 없이 무위도식하며 보통은 자제했어야 할 짓거리들을 서슴지 않고 자행하며 마음껏 삶의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 것이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무책임의 무한자유. 바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해서는 안 될 짓들은 용서받을 것이고 저지른 모든 문제들은 대신 처리해줄 것이고 사회는 국세를 동원해서 편안히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 바보를 보호하고 양육해줄 것이다. 도대체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더 낫다는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돼지를 경멸할지 모른다. 하지만 돼지는 소크라테스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누가 더 행복한가.

바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고 편리하며 결과에 대해 아무런 단죄조차 없는 완전한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지 깨달은 사람들이 뒤늦게나마 바보로서의 삶을 과감하게 실천하고자 도전하는 과정과 실상을 그린 영화가 바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 <백치들>이다. 일탈의 쾌감. 당혹스러워하는 것은 타인들이다. 아직 정상적인 고정관념을 신봉하고 믿고 따르는 보통 사람들만이 그 바보놀이에 놀라 자빠지고 피해자가 되고 상처받고 고통받을 뿐이다. 지구본 위에 촘촘하고 정확하게 그려진 경도와 위도 눈금들처럼 이 세상 위에는 정교한 규칙들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한편 우리는 또 얼마나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인조인간들인가. 당신이 절대진리라고 믿고 있는 모든 가치들은 오랜 시간 집요한 교육과정을 통해서 포맷된 프로그램이 산출해주는 행동지침일 뿐이다. 당신은 하나의 컴퓨터와 다르게 입력된 적이 없는 자율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단지 ‘그냥 그러고 싶어서’라는 이유만으로 일요일 오후의 명동거리에서 발가벗고 춤출 수 있는가

지정된 명령이 아닌 행동을 실천할 때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바보가 아닌 대신에 성능 좋은 인조인간들이다. 얼마나 프로그래밍이 잘됐는지 바보 같은 짓은 해보지도 않고 하면 안 된다, 할 필요조차 없다, 는 결론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단순한 기계장치와 입력된 프로그램만을 단순반복하는 ‘로봇’과는 다른 우리는 ‘휴머노이드’로서 ‘욕구’라는 것이 있다. 우리의 내부는 늘 프로그래밍된 규칙들과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욕구들과의 끊임없는 충돌로 언제나 크고 작은 오류들로 고통받는 존재들이다. 하고 싶은 욕구들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 억제된 동물적 본능들이 빙의된 사람 속의 굶어 죽은 귀신처럼 몸부림을 치고 있고 그것을 제압하려는 의식과 교양과 논리와 철학과 자아성찰. 욕구는 바이러스이고 교육과 캠페인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백신이다. 만약 어떤 컴퓨터가 “나는 왜 제조됐을까 왜 나는 120만원일까”라는 문제의 답을 구하고 있다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정신적으로 고통받지 않으려면 완벽한 로봇이거나 혹은 완벽한 바보이어야 한다. 하지만 로봇은 기쁨을 모른다. 바보는 기쁨과 행복은 느낄 터. 아무래도 나은 쪽은 바보이다. 나는 바보도 로봇도 아닌 생각을 한다. 생각하는 죄로 삶의 쳇바퀴를 매일 돌린다. 시시포스처럼. 고로 나는 고통받는다.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www.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