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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웃음’을 주련다
2001-04-25

한국영화회고록 - 심우섭편 8 활발한 충무로 초년시절, 그리고 <청춘사업>의 성공

영화를 시작하던 당시, 내가 손대지 않은 장르는 거의 없을 정도였다. 미스터리, 액션, 멜로, 호러, 코미디 등의 다양한

장르와 국경을 넘나드는 소재의 선택은, 감독으로서의 자아를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 스승 홍성기의 흥행감독에 대한 압박감을 익히

봐온 터라 인기를 염두에 둔 장르 고집은 내게 없었다. 이렇듯 장르와 장르 사이를 마음껏 종횡무진하던 나를 신상옥 감독 등은 부러워하기도

했다. 첫 영화 <백련부인>(1958)에서 고고학자와 발레리나의 사랑이라는 글로벌한 소재를 택했다. 딴에는 멋을 많이 낸 듯도

하다. 누벨바그가 등장하기 전부터 카메라 워킹에 대한 진지하고도 새로운 시도를 영화 속에 반영하고자 한 나는 이 영화 <백련부인>에

그러한 실험정신을 한꺼번에 쏟아부었다. 흔들리는 화면, 쓰러지는 인물과 함께 추락하는 카메라는 이전의 견고하게 고정된 화면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것은 대단히 새롭고 또한 혁명적인 것이었다.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는 화면이 훌륭한 화면이던 당시, 나는 카메라와 함께 기존의 고정관념도 팽개쳤다. 그러나 살에 와닿지 않는

스토리는 일명 고무신 관객(당시의 여성관객을 낮춰 이르던 말)들의 외면을 산다. 첫 영화의 흥행 부진은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신중한 소재 선택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다음 작품 <초립동>은 따라서 지역적인 색깔을 강하게 띤다. 전라도 남원의 기생들과

소리(唱)를 소재로 택했는데, 토목기사 시절 자주 드나들던 기방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국악인 한동성의 소리와 배우 황정순의 열연

탓인지 어느 정도 관객이 들었다. 그때 전영길이라는 제작자가 나를 찾았다. 그는 방송 드라마로 인기를 끌고 있던 <아빠 안녕>을

영화로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다. 사실 나도 탐나는 작품이었으나 제작자가 터무니없이 원작료를 깎으려 드는 통에 계약이 쉽지 않았다. 내가

중재에 나서 처음에 50만원이던 가격을 감독의 이름을 걸고 20만원까지 낮춰놨다. 그런데 제작자가 5만원을 더 깎자고 나오자 나도, 원작자도

아예 물러나 앉아버렸다. 아까운 마음에 주동진이라는 감독에게 소개를 시켰더니 그는 70만원을 주고 흔쾌히 샀더란다. 결국 이 영화는 대박이

터졌고, 기회를 놓친 제작자는 쓴 입만만 다셨다. 나중에 그가 다시 나를 찾았을 땐, 상황이 더 나빴다. 그의 손에 들린 돈은 달랑 4만원.

어디서 구했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전영길은 텔레비전을 판 돈이라고 하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나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신춘문예 당선 뒤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던 김문엽을 종로 백성여관으로 불러 시나리오를 쓰게 했다. 어떤 내용을 원하냐고

묻는 그의 말에 무심결에 “응, 청춘사업을 다룬 얘기면 좋겠는데” 했더니, 갑자기 그의 눈이 밝게 떠진다. “오야지(자신의 윗사람을 부르는

일본말), ‘청춘사업’ 그거 괜찮은데요. 아예 제목으로 쓰지요.” 자연스레 다음 작품의 이름은 <청춘사업>으로 정해진다.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지금은 연애라는 말 대신 청춘사업이라고 해도 척 알아듣지만, 그 당시엔 굉장히 생소하고 새로운

표현이었다. 영화가 상영된 뒤 ‘청춘사업’이라는 말은 대유행을 한다. 이 작품은 서울관객 12만명 동원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제작자들의

방문도 잦아졌다.

유호가 각본을 맡은 <주책바가지>는 코미디영화였는데, 대사가 아주 맛깔났다. 메가폰을 잡고서 단 한줄도 대사 수정없이

바로 슛이 들어간 작품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가난한 뒷골목 삶을 다루면서도 은근슬쩍 웃음으로써 사회를 비판하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나는 본격적인 코미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대여섯편의 작품을 끝내자 내겐 어느 정도 코미디의 본위에 대한 질문이 풀렸다. 코미디란 모름지기

‘참웃음’을 전제로 하는데, 참웃음이란 정서적인 호소력 즉 페이소스가 강한 작품에서만 얻어진다는 것. 페이소스를 강하게 가지려면, 그 소재와

내용이 서민의 삶을 바탕으로 그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무엇보다 ‘꿈’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배웠다. 그것은 나에게

움튼 최초의 작가정신이기도 했다.

구술 심우섭 | 영화감독·1927년생·<즐거운 청춘> <남자식모> <남자와

기생> 등 다수 연출

정리 심지현 |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